본문 바로가기
품앗이칼럼 · 2025.02.18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격절의 모순 극복을 위한 기도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5.02.18 16:36 조회 3,036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격절의 모순 극복을 위한 기도 - 금관의 예수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깜깜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1972 년 공연된 동명의 마당노래극에 삽입된 노래입니다 .

이 노래극은 김지하 시인의 [ 구리 이순신 ] 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연극대본을 시인이 직접 대폭 수정을 하고 , 이를 다시 연출과정에서 계속 가다듬어 완성시킨 연극입니다 . 한 때 원작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합동창작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

image01
image01

노래는 김지하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것니다 . 성당 앞에 금관을 쓴 예수가 서있습니다 . 그 아래에는 거지가 신음하고 있고요 . 그 앞을 부자도 지나가고 사제도 지나가지만 이 거지를 챙기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 경찰은 오히려 그를 쫓아내려 합니다 .

집도 가족도 먹을 것도 없는 거지의 탄식만이 허공에 메아리칠 뿐입니다 . 그때 거지가 금관을 쓴 예수를 발견하고 저 금관을 가져가면 한 평생을 편히 살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 어디선가 ‘ 어서 이 금관을 가져가라 !’ 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합니다 .

가시관 대신 금관을 쓴 예수 , 물욕에 사로잡혀 권력을 탐하는 타락한 제도권 종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려했던 예수의 정신은 사라졌습니다 . 오히려 우상화하여 돈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

하여 시멘트 옷을 입고 금관을 쓴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세태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 유신 시절을 극복했나 싶었는데 못지않게 참담한 계엄의 시절을 견뎌내야 할 판국입니다 .

유투브 등을 통한 극단적 발언들이 난무하면서 옳고 그름의 판단은 오히려 더욱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 황금만능주의가 더욱 팽배해져 종교지도자들마저 탐욕의 손길을 감추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철지났다 싶은 이 기도의 노래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노래는 바로 이러한 격절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다짐 혹은 그 소망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 절망적 상황을 적시함으로써 희망의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

한때는 음반 발매 허가를 얻기 위해 북한의 참혹한 상태를 그린 것으로 개사하여 불리기도 했습니다 .

(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 어두운 북녘 땅에 아 한 줄기 빛이 내리고 ...//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 저들과 함께 하소서 ...) 슬픈 노래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위안을 주듯 절망의 탄식이 오히려 희망의 마음다짐에 힘이 되기도 합니다 .

그 엄혹한 시절에 큰 위안이 되었던 절망의 희망가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 아침이슬 ] 도 부를 필요가 없고 [ 상록수 ] 도 더 이상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그런 시절은 없나 봅니다 . 이런 다짐 노래를 통해서라도 이 엄혹한 시절 잘 극복해나가시기 바랍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 사진

격절의 모순 극복을 위한 기도 사진 1

첨부자료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