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면 장선리 ( 長仙里 ) 운주면 연구 . 운북면 ( 雲北面 ) → 운선면 ( 雲仙 ) → 운주면 ( 雲洲 ) 그 변천사가 복잡하여 좀 힘이 든다 .
금산이나 양촌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3 거리에 근근하나마 5 일장이 서며 , 중학교 ∙ 초등학교 ∙ 유치원과 지서 , 우체국 , 농업협동조합이 있는 면소재지이다 . 지금은 쇠락해 쓸쓸하지만 광산이 잘 되던 예전엔 돈이 잘 돌았고 , 외지 사람도 많았다 .
충남으로 흐르는 맑은 물길 따라 양촌 , 논산 , 연산 내왕이 가까워 이쪽과 혼인도 많이 하여 준 ( 準 ) 충남권이다 .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전부터 충남편입을 마다하지 않는 특별한 지역임을 알아야한다 . 아마 면민투표를 한다면 ‘ 가려는 편 ’ 이 많을 것이다 .
이런 저런 사정을 알았는지 말골재를 깎아 낮추고 길을 넓힌다니 두고 볼 일이다 . 애타게 개발한 게 곶감산업 . 축재에 외지 사람 끌어 모으려고 지혜를 짜내나 쉬운 일은 아니다 . 다 아는 사실 동상면 다음으로 산이 많은 지대이다 . 오죽하면 지명이 운주 ( 雲洲 ) 일까 ?
‘ 구름 섬 !’ 산허리에 안개 끼면 마치 구름 위 산봉우리가 섬으로 보여 얻은 이름이다 . 이런 데는 신선 ( 新鮮 ∙ 神仙 ) 한 곳으로 구름 타고 선녀 ( 仙女 ) 내려올만한 곳이라 운주 ( 장선 ) 처녀에게 장가들어 손해 본 사람 없다 . 삼거리 한식식장 아주머니는 이야기 솜씨가 뛰어난다 .
전남 부잣집 처녀가 운주로 시집 와 선녀 (?) 가 된 사연 들으며 밥 먹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 여인의 굳은 의지를 배울만하고 터놓고 하는 경험담 주민이 알아 줘야한다 . 장선리의 이름과 딱 맞는 여인이다 . 아리랑 고개 지나다 말이 떨어져 변을 당했다는 데 지금은 자동차가 싱싱 달린다 .
신라 5 만 군병이 골을 달려 올적에 아리랑 고개를 막지 못하여 백제가 망했다 . 신라는 백제를 점령하고 유민을 달래기 위해 화암사를 열었다 . 지금은 경천면이지만 전엔 운주 땅이었다 . 경천면 대석골 박기준 씨는 고당 피목까지 표를 훑어 모아 민선 면장 하기 싫을 때까지 역임했다 .
이분은 애경사에 돈 대신 막걸리 한 통씩 보냈는데 본인이 술을 잘 들어 ‘ 절반은 먹고 간다 .’ 는 일화를 남겼다 . 친화력이 대단했다는 말이다 .
장선에서 가까운 양촌에 3 대 100 년 넘는 주조장이 있고 , 부적면 신풍길 35 붕어마을 매운탕 맛이 좋으며 , 탑정저수지에서 가까운 계백 장군 유적지와 군사박물관 외에 관촉사 ∙ 쌍계사가 있어 바람 쏘이려 나가기가 쉽다 .
쌍계사 입구 부도 9 기는 절의 내력을 알러 주는데 중수기 비문에 따르면 ‘ 고려 충숙왕 (1313 ∼ 1339) 때 명필 행촌 이암 ( 杏村 李嵒 :1297 ~1364) 이 발원 창건하였으며 , 목은 이색 (1328 ∼ 1396) 이 사적기를 지었다 ’ 고 한다 .
장선 ( 長仙 ) 은 멀리멀리 뻗어나갈 이름 , 이래서 이웃 얘기가 많이 섞여진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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