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김춘배의 함남 권총의거를 보도한 동아일보(1934.10.22)호외. '순사부장을 또 사격' '신출귀몰 십구일간의 대담한 범적 극적 장면' 등의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 DB) 삼례 ( 參禮 ) 무기수 ( 無期囚 ) 김춘배 ( 金春培 ) 김창언 ( 金昌彦 :1873 ∼ 1942) 둘째 아들이 김춘배 ( 金春培 :1909 ∼ 1946) 로 1934 년 10 월 함경남도 신창 ( 新昌 ) 주재소 격납고를 습격 무기를 빼앗고 , 19 일 동안 함경남도를 누비며 일본 순사 부장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우리 고장 제 1 등 애국 독립투사이었다 .
1927 년 (21 살 ) 2 월 만주 돈화현 ( 敦化縣 ) 에서 이청천 ( 李靑天 ) 장군 정의부군 ( 正義府軍 ) 에 가담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여 간도를 뒤집어 놓았는데 “ 가족을 몰살하겠다 ” 는 일본 경찰의 협박에 못 견뎌 자수했다 .
탈옥 경력도 있어 서울서대문형무소에서 8 년 동안을 복역했다 . 김춘배는 1934 년 4 월 출감한지 7 개월만에 신창주재소 무기고에서 장총 6 정 , 권총 2 정 , 실탄 800 발을 탈취 북청 ( 北靑 ) 어업조합을 습격 군자금을 마련해 만주독립군과 합류하려다가 경성행 열차 안에서 붙들렸다 .
잡히기 전 19 일 동안 동원된 경찰병력과 인력이 2 만이었다 (1934.10.24 < 동아일보 > 호외 신문 보기 ).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 무기수 ( 無期囚 ) 는 해방이 되어 풀려났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6 년 12 월 1 일 길거리에서 숨져 서울공동묘지에 묻혔다는데 묘를 모른다 .
같은 삼례사람 양칠성 ( 梁七星 ) 은 ‘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 으로 추대되어 대접을 받는다 . 교육 수준이 인도네시아보다 훨씬 높은 완주와 삼례는 김춘배 이름 석 자도 기억해 주지 않으니 애국지사의 영혼이나 온 나라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곡할 일이다 .
우선 완주기독교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김춘배 아버지 김창언 집사는 1907 년 가을 자기 집 사랑방에서 사숙 영흥학교 ( 永興學校 :1909 년 교명 ‘ 영신 ’ 으로 바꿈 ) 를 열어 재무를 맡았고 이 학교가 삼례중앙초등학교 아닌가 ?
‘ 금강산구경도 식후경 ’ 속담대로라면 배 이만큼 부르고 , 구경도 해외를 포함 어지간치 다녔으니 옛 신문을 뒤적이며 남 얘기에도 귀 기울여 애국지사 무기수의 행적을 살펴보기 바란다 . 고산현 옥터를 ‘ 넌덜막 ’ 이라한다 . 기억하기 싫다는 말이다 .
지금 민주국가지만 경찰서 검찰청 교도소 갈만한 곳 아니다 . 김춘배 체포 - 취조 - 재판 과정을 상상해보자 . 완주 부군수와 3 국장은 김춘배를 살펴보기 바란다 . 이게 선정이다 . 삼례제일교회 당회원과 삼례기관 단체 및 선출 직원에게 애향정신이 되돌아오기 바란다 .
“1918 년 2 월 24 일 본교회 ( 本敎會 ) 김계홍 ( 金桂弘 ) 장로 5 형제 권속 30 여 인과 , 이창옥 ( 李昌玉 ) 집사 , 반기춘 ( 潘基春 )· 박대필 ( 朴大必 ) 씨 등 전 가족 50 여 인이 중국 동북지방 길림성 ( 吉林城 ) 연길현 ( 延吉縣 ) 으로 이거 ( 移居 ) 케 되니 교회가 거의 떠난 셈 그중 입교인 ( 入敎人 ) 만 29 인인고로 교회는 영산 ( 零散 ) 한 중이다 ” 『 삼례제일교회역사 』 열다섯 번째 글 이민편 ( 移民編 ) 기록이다 .
김계홍 (1869 ∼ 1942) 동생이 김창언 . 창언 아들이 춘배 . 김춘배는 1909 년 삼례 태생 ‘ 參禮 사람 ’ 이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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