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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6.05.02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2

인물 많은 비봉면 소농리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05.02 14:36 조회 5,3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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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리는 비봉면 소재지다 . 학교 , 파출소 , 농협지부 , 보건지소 , 우체국 , 교회 , 음식점 등 찾기 쉬우며 전에는 주조장도 있어 이야기 거리가 많다 . 주조장 주인 유준상은 해방 후 면장을 했고 1948 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 2 년간 국기 ( 國基 ) 를 다듬었다 .

그 아들 희택은 서울대학교 경제과를 졸업 나웅배 부총리와 동창이며 중학교 교장을 했고 , 작은 아들 명월 희창은 중앙대학교에서 수학 일시 교직에도 있었으며 비봉농협장과 통대의원을 했다. 근래 아버지 추모비를 장승공원에 세웠고 지금은 고흥유씨 참의공종회장으로 활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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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수로는 담양국씨가 많으나 정치와 선거 수완은 고흥유씨가 최고란다 . 그도 그럴 것이 한말 ‘ 일문구의사 ( 一門九義士 )’ 가 나온 집안이라 일제 탄압도 받았지만 시련을 많이 겪어 연단된 집안이다 . 유종상 유희빈 소병래가 도의원을 했는데 모두 소농리 출신이다 .

솔티재 너머 백제예술대학교가 있다 . 여기에 착안 학생 상대 숙박시설 ‘ 원룸 ’ 을 지어 재미 보는 마을이다 .

자연 부락 신복 - 문장 - 원소농 - 평치마을을 비롯하여 주민들 공론이 ‘ 담양국씨와 고흥유씨를 능가하기 어려우니 제 3 세력을 키워야 한다 ’ 며 ‘ 전주이씨화수회 ’ 가 생겨나 묘한 구조로 발전하는 부락 ( 면 ) 이다 . 범바위를 깨야 비가 온다며 익산군민의 해꼬지가 있었다 .

파출소장의 명담 . “ 경찰관 편하려면 소농리 근무가 최고란다 .” 주민 밥 먹으며 수박 밭 비닐하우스 속으로 죄다 들어가 사건 사고가 나지 않아 편하기가 제 집에서 노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 500 원 택시까지 생겨 한의원과 찜질방 나들이가 편해지자 박성일 군수 인기가 자꾸 높아진다 .

유윤상의 별명이 ‘ 정월초하루 ’ 20 대에 면장을 했고 교육위원을 젊어서 했다 . 장작 장사를 하는데 ‘ 세어 가라 ’ 는 정도로 후한 인물이었다 . 그의 아들 희빈은 정치에 관심이 커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 30 년 전 유윤상 님 회갑 잔치 (1986 년 4 월 12 일 ) 때의 시이다 .

‘ 높은 절벽 겸허한 대응 ’ 달실 [ 月谷 ] 자리 잡은 골 / 명현이 잠든 터 / 이마에 앞산 닿는다 ./ 뒷산에 발 걸린다 ./ 뵈는 하늘 좁구나 !/ 땅은 더 쫍구나 !/ 냇물도 적구나 !/ 논밭 거칠구나 !/ 월곡이 자리 잡은 이골에 / 금만평 끌어 들이자 / 만경강 물 품어 올리자 / 주름 잡힌 농민 얼굴 피어주자 / 지게를 벗겨 주자 / 고지 빚 없애자 / 장리쌀 없애자 / 우리들도 넥타이 매고 5 거리를 활개치자 / 아들 딸 수돗물 먹이며 공부 시켜보자 / 이 한 풀고자 / 전주 옴팍집에서 / 고산 장터에서 / 봉상장 어귀에서 / 삼례 4 거리에서 / 쇠전거리에서 / 소농리 가갈 길에서 / 이서 황토밭에서 / 고개 숙여 인사하고 / 외쳐대며 / 까칠한 손 잡아주던 / 유수 ( 柳叟 ) 윤상 선생 수연 자리에 / 새가 달려듭니다 ./ 날아듭니다 ./ 봉황이 나래 핍니다 ./ 골목이 넓어졌습니다 ./ 자동차가 들어옵니다 ./ 금마 헌병대 마당에서 / 총탄 맞고 쓰러진 의사의 넋이 숨 쉬고 있습니다 .< 이하 생략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인물 많은 비봉면 소농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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