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꽃 핀 봄날에 술고두밥을 널며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는 보릿고개라 하였으니 , 비축해둔 식량은 겨우내 바닥나고 보리는 야속하게도 영글지 않는 오월 이맘때를 일컫는다 . 곡식 한 주먹으로 풀죽을 끓여 온 식구를 먹여야 했다던 보릿고개에 이팝나무꽃은 어찌하여 하얗게 하얗게만 피는가 .
뱃가죽이 등에 붙은 허기에 올려다본 몽실몽실 덩어리져 핀 이팝나무꽃은 영락없는 쌀밥이라 숟가락을 놓고 뒤돌아서면 배가 고픈 아이들은 덕지덕지 붙은 꽃들이 쌀밥이 되어 떨어지길 바라며 얼마나 헛된 위안을 받았을까 , 춘궁기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 1960 년대까지 이어지며 근현대를 살아온 70 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지만 , 요즘 젊은 세대에게 풀뿌리를 캐다 죽을 끓이고 나무껍질을 벗겨 끼니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쉽게 공감될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
“ 밥을 못 먹는데 왜 술을 빚었어요 ?” 얼마 전 광주 새날학교의 고려인 학생들에게 술고두밥이 무엇인지 설명하던 중 한 학생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
쌀이 그렇게나 귀하고 , 집에서 술 빚는 일이 금지되어 몰래 빚어야 했던 시기에 왜 술을 빚는다고 고두밥을 쪄야 했을까는 나조차도 궁금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
술은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아껴둔 곡식으로 반드시 준비해 두어야 했던 그만큼 중요한 음식이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웠거나 부모에게 들어보았을 소련 붕괴 후 연해주 ,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떠돌며 정착해야 했던 ‘ 까레이스키 ’ 라 불렸던 그들의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의 고생스럽던 이야기도 희미하게 떠올렸을 것이다 .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 따윈 관심조차 없다는 듯한 학생들의 무심한 표정을 보며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오늘의 풍요를 일궈놓은 앞선 세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다 . 세대를 거듭하여 이 어린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현실이 아닌 역사로 듣고 있으니 말이다 .
찹쌀을 깨끗이 씻어 불려두었다가 방금 쪄낸 고두밥으로 학생들에게 동그란 주먹밥을 만들어 먹게 해줬다 . 찜솥에서 푹 져낸 고슬고슬한 술고두밥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맛있었나 보았다 . 학생들은 서툰 한국어로 맛있다며 즐겁게 먹었다 .
술고두밥을 몰래 훔쳐 먹다가 혼이 났다던 할머니 , 할아버지의 시간으로 돌아가 꿀맛 같은 한 덩어리의 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을 알아주었을까 싶다 .
조선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 (1681~1763) 은 「 성호사설 」 에서 식량을 아끼기 위해 하루 두 끼만 먹어보자는 식소 ( 食小 ) 주장을 논하며 부유한 집에서는 하루 일곱 끼의 식사를 하고 술과 고기가 넘쳐나 하루 식량으로 백 명을 먹일 수 있는 양을 소비한다고 세태를 비판하였다 .
삼백 년이 지난 오늘 , TV 를 켜면 어디나 나오는 소위 먹방 (‘ 먹는 방송 ’ 의 줄임말 ) 이 나는 탐탁지 않다 . 카메라 앞에서 방송인과 유튜버들이 경쟁적으로 접시를 쌓아가며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앞선 세대의 피나는 노력으로 일군 풍요를 과용하는 세태가 무척 못마땅하다 .
세계 곳곳에서 굶주림은 현재 진행형이다 . 불과 몇 달 전까지 평화롭게 살던 아이들이 전쟁으로 굶어 죽어간다는 뉴스가 매일 전해지는 요즘 , 우리의 아이들이 소박한 한 끼 식사에 항상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길 바라며 잘 공감되지 않을 보릿고개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해주리라 다짐해본다 .
우리의 부모 세대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