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들의 활동으로 열과 이산화탄소가 분출하며 술덧이 끓어오르면 술독에서 빗소리가난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세계 술을 빚으면 보게 되는 , 보아야만 하는 세계가 있다 . 바로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 미생물의 세계이다 .
술을 빚기 위해 도구를 철저히 소독하고 , 쌀을 백번 씻고 , 고두밥을 고루 익혀 찌는 모든 과정은 미생물들에게 편안한 거처를 제공할 목적이니 , 사람의 술 빚기란 곧 미생물들에게 협업을 구하는 일이다 . 쌀가루로 죽을 끓여 차게 식혔다가 누룩과 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아놓는다 .
이불을 씌워 하루 이틀 지나면 술독 안은 어느새 35 도가 넘게 열이 나고 자잘한 기포들이 쉴 새 없이 터지며 빗소리로 가득 찬다 . 쌀양보다 물양이 많을수록 빗소리는 더욱 세차지는데 흙 마당에 떨어지는 여름 빗소리와 비슷하다 .
술독 안이 터지는 기포 , 분출하는 열과 이산화탄소로 요란스럽고 , 향기로운 술내를 풍겨내기 시작하면 술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
쌀가루로 빚으면 대개 1~2 일 , 고두밥으로 빚으면 3~4 일 걸려 이러한 주발효가 일어나는데 , 이는 술의 성패를 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어서 나는 술독에 귀를 대보거나 냄새를 맡아보고 급기야 자발스럽게 뚜껑을 열어보느라 어설픈 집사 티를 낸다 .
누룩 속에 잠자고 있던 미생물들을 깨워 제발 향기로운 술을 빚어달라고 아양을 떠는 것이다 . 효모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크기의 미생물이다 .
20~25 도 정도의 기온에서 잘 살며 , 인류는 BC3000 년 경부터 이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빵과 술을 만드는 데 이용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
효모는 당을 먹고 살며 , 모체에서 배아가 자라 떨어져 나가는 증식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데 이때 내뿜는 호흡으로 열과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면서 두꺼운 옹기 항아리마저 끓게 만든다 . 효모의 탁월한 능력은 또 있다 .
효모는 술독 내부에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게 되어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면 증식을 멈추고 대사 활동에 전념한다 . 이때 먹고 소화해 배출하는 것이 바로 알코올이다 .
이 신묘한 대사산물인 알코올은 세상 어떤 발효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 인류의 역사는 이와 함께 희노애락과 흥망성쇠를 이어왔다 . 효모 외에도 누룩곰팡이와 젖산균은 매우 중요한 일꾼이다 .
와인의 주재료인 포도는 자체가 당으로 이루어져 사람이 으깨어 놓기만 하면 효모가 바로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 그러나 쌀로 빚는 술은 다르다 . 사슬처럼 이어진 쌀의 전분을 당으로 작게 잘라내야 효모가 먹을 수 있어 누룩곰팡이의 힘을 빌려야 한다 .
누룩곰팡이가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고 효모는 당을 먹고 증식하는 동안 침입하는 세균들을 막기 위해 젖산균이 방어막을 쳐주는 협업 과정은 주신 ( 酒神 ) 의 진두지휘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 빗소리 가득한 술독을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는 선명히 드러난다 .
보이지 않아도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말이다 . 그러니 술을 정성껏 빚는 일이란 필요한 미생물들의 조화로운 균형을 살피는 일이다 . 그 균형이 어긋나면 술은 발효가 아닌 부패의 길로 들어선다 .
코로나 역시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로 조화로운 균형이 깨진 틈을 타 찾아온 보이지 않는 것들의 경고이지 않을까 . 공포와 강박으로 지배당하지 말고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을 구해야 할 때이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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