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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3.07.25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9

백번 씻어 향기로운 술을 얻다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3.07.25 14:45 조회 4,28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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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씻어 향기로운 술을 얻다 좋은 쌀과 누룩 , 물이 준비되었다면 술 빚기는 쌀을 씻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 술을 빚기 위한 쌀 씻기를 백세 ( 百洗 , 백번 씻는다 ) 라고 한다 . 밥 지을 때의 쌀 씻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 밥 지을 쌀은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설렁설렁 씻는다 .

술을 빚을 쌀에는 쌀의 고른 영양성분보다는 효모라는 미생물이 먹이로 삼게 되는 전분이 주로 필요하다 . 칼슘 , 단백질 , 지방 , 무기질 ,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성분은 주로 쌀알의 겉면에 분포되어 있고 , 전체 영양성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탄수화물 , 즉 전분은 쌀알의 내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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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양조용 쌀의 도정률에 따라 술 등급이 나뉠 정도로 도정과정에서 술에 불필요한 양분을 제거한다 . ‘ 쥰마이 다이긴죠 ( 純米大吟釀 )’ 로 불리는 일본주의 최고 등급은 쌀의 50~60% 를 깎아낸 좁쌀만 한 크기의 쌀로 술을 빚기 때문에 한 병의 술을 얻기 위해 엄청난 양의 쌀이 손실된다 .

우리의 가양주 빚기에서는 그러한 도정과정을 대체하기 위해 쌀 씻기 ( 백세 ) 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 쌀을 물에 담그면 금세 수분을 빨아들이는데 백세 시간이 오래 걸리면 물에 불은 쌀이 깨지기 쉽다 .

깨진 쌀이 많으면 온전한 쌀알보다 발효가 먼저 일어나 균일한 발효에 방해요인이 되어 술맛이 조화롭지 않고 맑지 않다 . 성급히 발효가 되다 보니 신맛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쌀이 불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서두르다 쌀을 맑게 씻지 않으면 쌀에 있는 지방이나 단백질 성분이 많이 남게 되어 완성된 술 표면에 옅은 기름띠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소량의 지방과 단백질은 분해과정에서 술의 방향 ( 芳香 , 아름다운 향기 ) 을 만드는 성분이지만 , 많이 남아 있으면 꿈꿈한 냄새를 일으킨다 . 조금은 남아 있어야 하되 많이 있지 않아야 한다 . 백세를 대충 할 수 없는 이유이다 .

“ 술을 빚는다는 것은 긴 과정 내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도의 어느 지점을 찾아내는 일의 연속 ” 이라는 박록담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에게서 배운 백세 방법은 이렇다 .

손바닥을 펴서 빠른 속도로 원을 돌리며 회오리 물살을 만들어 휘젓는다 . 탁한 쌀뜨물을 네다섯 번 빼내고 나서는 반죽기를 돌리듯 말이 백세이지 오백세는 되게 손바닥을 휘젓는다 .

손바닥 힘은 부드럽게 , 휘젓는 속도는 빠르게 하여 물살의 힘으로 쌀과 쌀을 마찰시켜 쌀뜨물이 빠져나오게 해 많은 양의 쌀을 최대한 빨리 깨끗하게 씻는 원리이다 . 겨울이라도 미지근한 물을 쓰지 않는다 . 쌀이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

휘젓기를 끝내면 되도록 쌀에 손을 대지 않고 물길로만 쌀뜨물과 쌀눈 , 잘게 깨져 떠오르는 싸라기를 흘려보낸다 . 불순물을 흘려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 맑은 물이 흘러나올 때 백세가 마무리된다 .

백세라는 말은 백번 쌀을 씻는다는 의미 ( 百洗 ) 와 그만큼 맑게 씻는다 ( 白洗 ) 는 의미로도 이해하면 좋겠다 . 백세는 술빚기의 중요한 기본이지만 , 사소하다 여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술 빚는 요령이 익숙해지면 어느새 백세를 더러 대충하게 되는 것이다 .

제자들이 빚어온 술을 맛보고 박록담 선생님은 자주 백세의 오류를 지적하였는데 , 맑고 아름다운 향의 술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을 지키지 않는 술 빚는 이의 성급한 자세를 탓하곤 하셨다 .

‘ 맑고 , 향기롭고 , 맛있는 술 ’ 을 빚는 비결이라면 좋은 재료를 고르고 , 각각의 재료를 적절하게 다루는 데에 있다 . 비결이란 결코 거창한 곳에 숨겨져 있지 않다 . 작은 일에도 한결같이 정성껏 행함에 있음을 쌀을 씻을 때마다 생각한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백번 씻어 향기로운 술을 얻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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