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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10.11

완주행보

이사이후 移徙以後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10.11 10:05 조회 5,6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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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사이후 移徙以後 혼자라면 고양이 이사는 정말 큰일이었다 . 견적 받고 날짜 정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포장하지 않는 일반이사라 내가 짐을 다 싸야했고 그러려면 미리 이삿짐센터에서 박스를 받아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자기들이 포장이사처럼 알아서 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

그래도 짐정리를 해야하니까 분류하고 버리고 챙기면서 사나흘은 짐을 쌌다 . 뭘 잘 사지 않으니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 쓸지도 몰라서 남겨둔 잡동사니들이 잔뜩 있다 .

바닥 완주행보
바닥 완주행보

필요하면 어떻게든 제 용도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쓰게 되니 엄밀히 말해 쓰레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이사갈 때 빈병과 재활용을 위한 뽁뽁이 서류봉투들까지 챙겨갈 순 없으니까 한번 제대로 정리하는 셈치고 버릴 것들을 버리면서 짐싸기가 1 단계 .

새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정리해서 짐다운 꼴을 만드는 게 2 단계 . 해도해도 끝없는 노동이 열흘 정도 계속된 듯 . 이사한 집에 마음에 드는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느낄 새도 없이 내게 너무나 큰 변화가 생겼다 . 고산의 길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살게 되었다 .

동물과 같이 산다는 건 자라지 않는 아기를 돌보는 끝없는 육아의 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 그 사실을 잘 아니까 평소 남의 집 고양이를 그렇게 예뻐하면서도 선뜻 같이 살 결심을 할 수는 없었다 . 게다가 나는 일하기 싫어서 저소비생활자로 내 삶을 적응시켜가는 중이 아니었나 .

집에 고양이가 있는 사람들은 운명처럼 내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 서로를 알아보고 고양이에게 간택된다고 말하지만 이 고양이가 그 고양일까 확신할 수 없었다 . 나는 앞으로 15 년 이 녀석을 보살필 각오까지는 되어있지 않으니까 . 그러니까 더 조심스럽지 .

녀석이 귀엽다고 , 내가 외롭다고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동네 애묘인들에게 자격면접시험을 보러다녔다 . 나라는 사람이 고양이랑 함께 살 수 있을까요 ? 영숙이네 집에서는 불합격 , 단풍 · 나무 집에서는 합격 , 오이네 집에서는 조건부 합격 , 미미네 집에서도 합격 .

시냥 · 아비 집에서도 합격 . 최초 구조자인 고산고 소녀들에게서도 합격 . 그래 , 마음을 내어보자 . 실은 주공아파트로 이사가게 되면 고양이와 함께 살기라는 오래된 소원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자주 진지하게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

들이게 되면 고등어줄무늬였으면 좋겠고 뱃속 아가에게 이름을 짓듯 상상 속 내 고양이에게 주공이라는 태명도 지었더랬다 . 그래 . 준비된 사람만이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 가족 계획이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 갑자기 찾아온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고맙게 받아들이고 노력하면 될 일이다 .

그렇게 나는 고양이와 한 집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 이름은 가지 . 병원에 갔더니 못 먹어서 말랐지만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 4 개월 남아 . 성격은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 그리고 엄청난 사실 . 산책을 좋아하고 드라이브도 즐긴다 . 그래 , 너는 내가 여행하는 고양이로 키울 것이다 .

같이 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을 때 밥도 안 먹고 토하고 설사를 계속해 깜짝 놀라 다늦은밤 병원도 한번 다녀왔지만 지금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큰다 . 아침마다 동네를 한 시간씩 산책하면서 . 산책냥 가지는 매일 산책을 나가지 . 오늘도 가지와 나는 행복하지 .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 람)

현장 사진

이사이후 移徙以後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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