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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6.10.06

완주행보

등고유희_登高遊戲 &lt8&gt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10.06 11:30 조회 5,3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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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라도 할라치면 퇴근길이 금방 캄캄해지는 가을이 왔다 . 한여름엔 더워서 자전거를 탈 수 없더니만 그새 어두워서 탈 수 없는 계절이다 . 어두울 때는 가끔 하는 자동차 운전도 무섭다 . 얼마 전 차가 생겨 조심조심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 시골살이에 자가용이 없으니 불편해서 엄마 차를 가져왔다 .

잠깐 빌려 쓴다 했지만 생신날 차 값인 셈 치시라고 봉투를 드렸으니 계속 타게 될 것이다 . 해가 점점 일찍 진다 . 낮과 밤이 같은 날은 추분이라고 배웠었지 . 다음에 뭐가 오나 궁금해져서 24 절기를 찾아봤다 .

등고유희
등고유희

도시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 때는 입추다 입동이다 하는 말만 흘려들었지 몸으로 자연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다 . 지하철과 사무실은 연중 크게 다를 바 없이 온도가 일정하다 . 오히려 여름엔 에어컨 때문에 춥고 겨울엔 히터 때문에 덥다 .

완주에서는 해 뜰 때 눈 뜨고 창을 활짝 열어 집 앞 논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니 계절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진다 . 게다가 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뚝방길과 마을길을 지나 출근한다 . 날씨 변화에 민감해졌다 . 구만리 만경강변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 논은 누렇게 물들어 간다 .

곧 국화가 필 것이다 . 이제 새벽엔 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없다 . 나는 농사를 짓지 않지만 찬 서리를 맡기 전에 수확을 서둘러야 한단다 . 고양이 손도 빌리고 불 떼던 부지깽이도 아쉬울 정도로 바빠진다 .

일교차가 심해져서 안개가 많이 끼고 하루가 달리 추워지기 시작하는 시기 , 절기상으로는 한로 寒露 다 . 절기를 들여다볼수록 놀랍고 대단하다 . 선조들의 지혜니 역사와 전통이니 습관처럼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

자연의 변화가 고맙고 두려운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알아차린 결과다 . 농사를 짓지 않아도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 고맙습니다 . 조상님 .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차량 점검을 받아야하니 입동에 맞춰 가야겠다 . 옛사람들이 때맞추어 기념하는 명절 , 세시풍속도 다 삶에서 나왔을 테지 .

한로는 10 월 8 일이고 중양절 ( 重陽節 ) 인 음력 9 월 9 일과 비슷한 시기다 . 올 중양절은 10 월 9 일이다 . 이때가 지나면 여름새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고 겨울새 기러기가 온단다 .

뱀이 돌에 입을 닦고 땅속으로 들어가고 모기도 들어간다고 하니 밤에 모기 때문에 자다 깰 일은 없겠다 . 중양절은 양의 숫자인 9 가 두 번 겹치는 날이다 . 중구 ( 重九 ) 라고도 한다 .

3 이 겹치는 삼월 삼짓날 , 5 월 단오 , 7 월 칠석까지 홀수가 겹치는 날을 복이 들어오는 날이라고 조상님들은 좋아들 하셨다 . 중양절에는 수유 열매를 담은 주머니를 차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등고 登高 풍습이 있었다 .

열매를 머리에 꽂으라고도 하고 배낭에 담으라는 데도 있는데 어쨌뜬 몸에 지니라는 뜻이겠지 . 빨간 수유 열매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으셨단다 . 귀여우셔라 , 조상님들 . 그렇게해서 재난을 피했다는 중국 전설을 따른 것이다 .

어쨌든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나 국화차를 마시고 시를 짓고 놀았단다 . 서울 사람들도 남산이나 북악에 올라 맛있는 음식 먹고 재미있게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 수유 열매가 뭔지 궁금하니 또 찾아보자 .

수유 나무는 쉬나무라고도 하는데 불 밝힐 때 쓰는 기름을 얻기 쉬워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집근처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 꽃은 여름에 피는데 무더기로 많이 피고 한 달 넘게 피면서 꿀도 많다 . 영어로는 무려 bee – bee tree( 벌꿀나무 ) 다 . 아이고 귀여워라 .

조선 시대 문헌에는 쉬나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재앙의 기운을 물리치고 첫 추위를 막아달라 빌었다는 내용도 있다 . 이런 엄청 고마운 나무잖아 . 흔하게 보는 나무라는데 아는 게 없어 지나쳐도 모를 판이다 .

수유 열매 배낭은 멨다치고 국화꽃이라도 머리에 꽂고 안수산으로 등고하여 먹고 노래하고 놀아야겠다 . * 글쓴이 바닥(badac) 이보현은 새내기 귀촌인이자 완주의 직장인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줍거나 얻어) 쓰는 자급생활을 지향한다.

현장 사진

등고유희_登高遊戲 &lt8&gt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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