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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5.12.16

완주이야기

고산면 율곡리 '밤실'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5.12.16 14:42 조회 5,4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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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실 뜻은 ‘ 밤 ’ 과 ‘ 골짜기 ’ 를 합한 우리말이다 .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밤은 ‘ 율 ( 栗 )’ 로 ‘ 실 ’ 은 고유어 골짜기 곧 ‘ 골 곡 ( 谷 )’ 자을 써 ‘ 율곡 ( 栗谷 )’ 이다 . 성리학자 이이 [5000 원 지폐 ] 율곡 ( 栗谷 ) 선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자연부락 안밤실 - 바깥밤실 - 진절미 ( 메 )- 원산 - 분토동은 물길 좋은 논이 적다 .

안밤실은 능성구씨 집성촌으로 주변에 이름 있는 무덤이 많고 구소 ( 具熽 :1588~1656) 문집이 있다는데 자손 자 ○ 은 보여 주지를 않아 아는 사람이 없으며 , 묘표는 송준길 ( 宋浚吉 :1606~1672) 의 병서 ( 竝書 ) 란다 .

바깥밤실은 원래 고령김씨 · 선산김씨와 함께 전주이씨 문환 ( 文煥 ) 자손들의 집성촌이었다 . 이문환은 고령김씨 집안 사위로 그 후손 400 년 간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이좋게 살아간다 . 이씨 자기들끼리는 다퉈도 , 김씨 김씨끼리는 싸워도 , 이씨 · 김씨는 의가 좋단다 .

한학자 김도련은 고령김씨를 빛냈다 . 전주이씨 종택 율곡재 ( 栗谷齋 ) 는 이문환 (1604~1688) 이 처음 자리 잡은 터로 400 년을 내려오는데 이처럼 알려진 집안이 귀하다 .

14 세 종손 이재규 ( 李再圭 :1924 ∼ 2012) 는 이존화 (3 ∼ 4 대 )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낸 지방 정치인으로 귀히 여긴 사람이 많았다 . 같은 마을 기업은행 지점장 임태식은 사람을 잘 챙겨 덕가로 소문이 났다 .

이 동네 지나는 상여와 영구차에 대한 시비는 옥의 티로 나쁜 인상을 주니 어서 고쳐야 한다 . 진절미 ( 메 ) 차종인 ( 車鍾仁 : 한문 수학 ) 은 제 5 대 국회의원에 출마 ( 무소속 ) 1,336 표를 얻었다 .

어렵게 살던 이 00( 전주 0 문교회 장로 ) 은 아들과 며느리가 의사이고 , 헐값에 산 야산에 과목을 심어 부자 소리를 듣자 모두 하나님 은혜라며 율곡리에서 전주까지 새벽기도를 다닌다 . 원산 ( 院山 ) 은 조선시대 공무 여행자가 쉬어가던 ‘ 원 ( 院 )’ 이 있어서 ‘ 원산 ’ 이다 .

남쪽을 향하는 산줄기와 동쪽에서 내려치는 물줄기가 맞부딪혀 물머리가 바뀌면서 깊은 소 ( 沼 ) 가 생겼고 , 그 옆 바위를 ‘ 탄근 바위 ’ 라 하는데 실은 ‘ 탄금 ( 彈琴 )’ 이 바른 표현이며 ‘ 거문고를 뜯던 바위 ’ 란 뜻이다 .

악한 현감 보다보다 분이 터지면 여인들이 나서서 삼태기에 담아다 ‘ 원산 ’ 밖에 내던졌다 . 계성학교 (4 년제 ) 는 율곡교회 부설로 해방 직전까지 있었으며 당시 유춘경 선생은 어려운 집 재주 있는 제자들 자비 들여 고산초등학교 (6 년제 ) 에 보냈다 .

17 번 길 가 고산농협물류창고는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 분토동에는 대명당 전주유씨 시조 유습 ( 柳濕 ) 묘가 있어서 찾는 사람이 많았고 재실 시사재 ( 時思齋 ) 는 고산 6 개면에서 으뜸이라 했다 .

근래 완주군에서 추진하던 개발사업 과정에서 땅을 넘겨주고 전주시 인후동 부인 묘 곁으로 이장했다 . 일반인들은 분을 토해 내는 ‘ 분토 ( 憤吐 ) 동 ’ 이 됐다며 안타까워 한 마디씩 했다 . 소 많은 율곡리 특등 싸움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

안동김씨 입향조 김현남 묘는 몇 년 전 화산면 와룡리 후동 종산으로 옮겼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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