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지금 필리핀 마닐라에 와있다. 올 해 휴가를 갖지 못한 참에 아는 지인이 필리핀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에 도움을 달라고 해서 어렵사리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마닐라 공항을 빠져나오며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예전의 필리핀 방문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필리핀의 첫 일정은 마닐라를 관통해 흐르는 빠식강 주변의 수상가옥에 살고 있는 빈민촌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빈민들은 수상가옥에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하천변에도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나마 형편이 나은 빈민들이 육상부에 살고 있었다.
그 판자촌 입구에서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을 대면했다. 3,4살 밖에 되지 않은 여자 아이가 팬티도 입지 않은 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배가 고픈지 울고 있는데 그 아이의 엉덩이는 갖은 오물과 쓰레기가 범벅이 된 구정물에 잠겨 있었다.
판자촌과 수상가옥의 수많은 광경을 보면서 나는 ‘이건 현실이 아냐’, ‘이건 영화일거야’를 수없이 중얼거렸다. 4,5년 전 필리핀에 온 것은 CAMP라고 하는 기독교 선교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목사의 초청 때문이었다.
CAMP는 필리핀 내의 빈민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던 나에게 필리핀 빈민촌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었다. CAMP는 마닐라 중심부에서 살고 있던 빈민들이 이주한 외곽지역을 주요한 활동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서울 청계천에서 살던 빈민들을 무작정 성남의 산등성이에 이주시킨 것처럼 마닐라는 빈민거주지가 도시개발에 필요해지자 빈민을 도시 외곽으로 이주시켰다.
일자리 많지 않아 남자들은 다시 마닐라 도심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주로 여성과 아이들만 남은 이주지역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CAMP는 나를 비롯한 사회적기업가들을 초청하여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한국기업과 한국교회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CAMP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은 한국기업의 철도건설에 따라 집을 잃은 빈민들이 주로 이주한 지역이어서 CAMP의 목사는 집을 잃은 필리핀 빈민을 한국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빠식강 주변의 빈민촌을 첫 일정으로 방문한 것은 필리핀 빈민의 실태를 제대로 봐야 이주지역에서의 빈민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필리핀의 마지막 일정은 필리핀 내에서 빈민운동을 하는 전문가 및 활동가와 웍숍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당신 나라의 빈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리핀의 농업과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 어리둥절했던 그 사람들은 한국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농사를 짓던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들면서 현재의 필리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였으며 지금은 외견상 보기에 필리핀보다 나아 보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빈민문제는 상존하고 있고 그 문제가 발생한 것은 농업과 농촌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설명했더니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공항에서부터 숙소로 오는 동안 어두운 마닐라 시내를 보면서 어쩌면 필리핀 사람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침몰하는 배를 함께 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지금 당장 먹고 살기 급급하여 침몰하고 있다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지금의 생활이 너무 달콤하여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농업과 농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평형수이다.
농업과 농촌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침몰하고 있는 중은 아닌지 꼼꼼히 되짚어볼 일이다. /임경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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