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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8.09.03

농촌별곡

기후변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8.09.03 15:07 조회 5,39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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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 기후변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목숨붙이란 목숨붙이는 다 태워버릴 기세였던 무더위가 9 월의 문턱에서 사그라졌다 . 누구라서 계절의 변화를 이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번엔 그 대가가 컸다 .

사람들을 네댓새나 공포에 몰아넣었던 초강력태풍 ‘ 솔릭 ’ 은 뜻밖에도 수굿이 지나갔지만 , 집중폭우가 한반도 곳곳에 내리칠 줄 누가 알았나 . 대도시에 물난리가 나고 , 농경지 곳곳이 홍수에 휩쓸려 땀 흘려 일군 한해 농사를 망쳤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들어붓는 빗줄기에 잠이 깨 ‘ 이러다 집 떠내려가는 건 아닌지 ’ 밤을 지새운 게 또 몇 날이던가 . 그나마 우리 고장은 농경지 - 농작물이 잠기거나 봇물이 터지는 따위의 큰 피해는 없었던 모양이다 . 불행중다행이라 해야 할지 . 그 난리를 치르고서 더위는 물러갔다 .

“ 내년에 다시 올게 !” 끔찍한 인사를 남긴 채로 . 어쨌거나 더위가 가셨으니 세상은 ,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무더위 이전으로 돌아갔다 . 한 달 남짓 속수무책으로 널브러졌던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일과 삶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지 . “ 가을이다 .

8 월에 진도 못나간 거는 무죄다 .”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에 올라온 어떤 이의 ‘ 선언 ’ 이다 . 좀 멋지지 않나 ? 이거야말로 지금 내 심경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은가 . 그런데 지금 죄가 있고 없음이 문제가 아니다 . 또 이제부터라도 진도 나가면 되는 것도 아니다 .

농사라는 게 말이다 . 누누이 얘기했지만 농사의 주인공은 농부가 아니라 작물이다 . 작물은 농부들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 다 지들 스케줄대로 자랄 뿐이다 . 공휴일이라고 성장을 잠시 멈추지 않는다 .

“ 지금 찜통더위 때문에 농부님이 당최 움직이질 못하니 혹서기에는 우리도 좀 쉬어가세 !” 그랬으면 오죽 좋겠나 . 실은 정반대다 . 작물에게 무더위는 더없이 좋은 여건이다 . 열대성 작물인 벼한테는 특히나 그렇다 .

문제는 작물에만 좋은 게 아니라 ‘ 양분경합관계 ’ 에 있는 ‘ 잡초 ’ 한테도 좋다는 점이다 . 무더위가 누그러지면서 다시 둘러본 논배미는 그새 많이 우거져 있었다 . 검은빛을 띤 벼포기가 잔바람에 물결을 일으키며 생명력을 내뿜는다 .

그런데 어우들 두 마지기에는 벼포기 대신 고춧대를 닮은 큰 키 풀이 온통 들어차 있다 . ‘ 여뀌바늘 ’ 이다 . 한해살이지만 벼보다 높이 자라고 나중엔 목질이 단단해진다 . 김매기를 다 끝냈을 즈음 싹을 틔우고 무더위 기간에 쑥쑥 자라 논배미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

양분을 빼앗긴 벼포기는 새끼치기도 제대로 못해 고작 대여섯 가닥에 그쳤고 그마저 빼빼 말라 있다 . 양분쟁탈전은 이걸로 끝이다 . 지금으로선 백약이 무효다 . 그래도 나는 저 여뀌바늘 무리를 죄다 베어냈다 .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

벼포기 사이를 헤집고 , 작은 ‘ 버들낫 ’ 으로 하나하나 밑동을 잘라내자니 일이 여간 고역스럽지가 않았다 . 사실 이제 와서 저 놈들 베어낸다고 해서 수확이 크게 늘지 않는다 . 거기에 들인 공을 따져보면 손해도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 그런 걸 뭐하러 ?

저대로 두면 모조리 씨앗을 받을 것이고 내년엔 그것들이 모조리 싹을 틔워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안 그래도 갈 길이 구만리다 . 무슨 열대밀림처럼 빽빽한 논두렁 수풀도 쳐내야 하고 , 도랑치고 도구쳐서 물길도 내야 한다 .

이 판국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힘을 빼고 있자니 폭폭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 이게 다 무더위 탓이야 ! 9 월 , 바람은 한결 선선해졌지만 ‘ 기후변화 ’ 는 지금도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차남호(비봉 영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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