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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5.06.18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소사의 목소리로 완성된 남방의 기도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5.06.18 17:10 조회 2,16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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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의 목소리로 완성된 남방의 기도 (18) 라미레즈 - 키리에 “ 주여 ,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여 , 자비를 베푸소서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이 짧은 기도는 수백 년간 미사곡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였습니다 .

서양 교회음악의 뿌리이자 , 가장 인간적인 탄식의 언어 . 하지만 때로 이 오래된 말은 고대 그리스도교의 울림을 넘어 , 민중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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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라미레즈 (Ariel Ramírez, 1921 – 2010) 의 [ 미사 크리올라 ]( Misa Criolla ) 속 [ 키리에 ](“Kyrie”) 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 이 곡은 전통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 따뜻하고 처연한 , 남미의 하늘과 땅이 묻어나는 기도로 바뀝니다 .

그리고 이 노래를 메르세데스 소사 (Mercedes Sosa) 가 부르면 음악을 넘어 하나의 생명력 있는 호흡이 되고 맙니다 .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라미레즈는 민속음악을 서양의 형식 안에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음악가입니다 .

그는 탱고나 클래식의 세련됨보다도 , 민중의 언어를 음악으로 되살리는 데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 그의 대표작 [ 미사 크리올라 ] 는 바로 그런 실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1964 년에 작곡된 이 미사곡은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라틴어 대신 스페인어로 가사를 쓴 최초의 미사곡 중 하나입니다 . 라미레즈는 유럽식 신앙을 남미 대륙의 색채로 환골탈태시켰습니다 . 이 미사곡은 단순한 종교음악이 아니라 , 억눌린 이들의 기도가 음악이 된 것입니다 .

이 음악을 진짜 기도로 만든 목소리가 있습니다 . 메르세데스 소사 , ‘ 라틴 아메리카의 목소리 ’ 로 불리는 그녀는 단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가 아니었습니다 . 그녀는 군부 독재에 맞선 시대의 양심이었습니다 .

저항과 연대 , 평화를 노래한 그녀는 라틴 아메리카의 슬픔과 투쟁 , 사랑과 용서를 한 몸에 담고 노래했습니다 . 소사의 목소리는 풍성하고도 깊습니다 . 그것은 안데스산맥의 메아리 같기도 하고 , 엄마가 들려주는 자장가 같기도 합니다 .

[ 미사 크리올라 ] 의 [ 키리에 ] 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무릎 꿇은 민중의 울음이자 , 자신과 타인을 향한 자비의 호소입니다 . ‘Kyrie eleison’ 은 “ 주여 , 자비를 베푸소서 ” 라는 뜻의 그리스어 기원의 기도문입니다 .

미사에서는 보통 세 번 반복되며 , 이는 삼위일체를 상징한답니다 . 대체로 이 구절은 엄숙하고 장중한 합창으로 표현되며 , 신의 위엄 앞에 선 인간의 미약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하지만 라미레즈와 소사는 이 기도를 울부짖음이 아닌 포옹의 노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대신 기타와 작은 북이 반주를 맡고 ,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리듬이 피어오르며 , 낯선 신의 이름이 아니라 내 이웃을 위한 기도로 전환된 것입니다 . 소사는 이 곡을 슬픔의 웅변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 기도하듯이 부릅니다 . 고요하면서도 생생하게 ! 절제되었지만 한없이 깊습니다 .

전통적인 [ 키리에 ] 가 수도원이나 성당의 울림이라면 , 소사의 [ 키리에 ] 민중의 광장 , 흙과 땀 , 눈물과 햇살의 자리에서 울려 퍼집니다 . 우리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 종종 위엄 있는 음악을 통해 나를 추슬러 세우려 합니다 . 하지만 라미레즈와 소사의 [ 키리에 ] 는 거꾸로 갑니다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 흐트러진 채로 있어도 괜찮습니다 . 자비는 당신이 무너지지 않을 때가 아니라 , 무너졌을 때 찾아옵니다 .” 이 음악은 어깨를 쫙 펴게 하지 않습니다 . 오히려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줍니다 . 무릎 꿇게 하는 음악이 아니라 , 무릎 꿇은 이 곁에 함께 앉는 음악입니다 .

그래서 이 [ 키리에 ] 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위로요 , 회복을 위한 고백입니다 . 바로 그 지점에서 , 우리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 고요와 흔들림이 함께 있는 그 자리에서 , 울음과 침묵이 어우러진 그 소리 안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

스승이요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랐던 서정인 , 정양 두 분 선생님을 홀연 떠나보내고 그 허한 마음 달래기 위해 요즘 자주 귀 기울이는 곡입니다 . 소사의 [ 키리에 ] 를 듣고 있는 동안 혼자 버려졌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됩니다 .

이 기도의 노래는 “ 주여 , 자비를 ” 이라는 말보다 먼저 , 우리들 마음에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속삭여주는 듯합니다 . “ 지나치게 애달파 하지는 마시라 . 남산 바라보는 유연한 마음으로 ( 悠然見南山 ) 그저 사랑하고 즐기시라 .

지금 이 순간을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 사진

소사의 목소리로 완성된 남방의 기도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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