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 花坪里 ) “ 도시 시골 다른 점이 냄새이었다 . 풀 벤 언덕을 거닐면 풀냄새 진했고 , 지나는 골목 생선요리 구수한 냄새가 담장 ( 울터리 ) 넘어 ( 새어 ) 나와 지나는 이의 구미를 돋우었다 .
명절 무렵 창호지에 바른 풀냄새 싫지 않았고 , 빨래터 나가는 순이와 좁은 길에서 살짝 비껴 설 때 풍겨나는 분향으로 더 예뻐 보이던 마을이 화평리이었다 .
봄날 외가 마당에 들어서면 고사리 말리는 냄새 특이했으며 , 문 열고 안방에 발 디디면 윗방에서 고이는 술 냄새 코끝을 건들었다 .” 이런 향취가 그득했던 ‘ 꽃들 [ 花坪 : 화평 ]’ 도 많이 변했다 .
사라진 것 중 가장 아쉬움이란 비 내리는 날 경천저수지 물고기가 새물 따라 몰려들어 물 반 , 고기 반 그물 던져 끌어당기기 어깨가 뻐근했다는데 지금은 송사리 한 마리 얼씬 거리지도 않는다 . 환경과 경제생활 변화 때문이다 .
잘 살려고 소 기르니 양축업자야 부자이나 짐승이 내놓은 똥오줌 흘려들며 , 농사 힘드니 제초제를 쓰지 않을 수 없어 풀 내음 대신 농약 냄새 코를 막는다 . 면소재지 ‘ 큰 동네 뭘 먹고 사나 ’ 묻는 이 많다 . 가까운 저수지에 물만 출렁일 뿐 들이 없어 논밭이 귀하다 .
마을 앞 내 건너는 화월리 ( 花月里 ) 땅 . ‘ 화평 ( 花坪 )’ 이름만 좋을 뿐 곡식 나올 전답 적은 마을인데도 잘 사는 사람이 있었다 . 주조장 주인은 부자 (?) 였다 .
한말에 들어온 고흥 유씨 ( 유민 ) 는 관청에서 일을 했고 , 살아가는 요령이 남달라 자제들 신교육을 시키는데 , 초등학교 졸업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전주사범 , 전주농고 , 전주고보 ( 현 전주 고 ) 에 보냈고 , 마치면 관리가 되어 면사무소 서기 ➔ 부면장 ➔ 면장을 도맡아 했으며 , 군청 ∙ 도청 간부도 많았다 .
이러하니 인허가 손쉬워 사업이 잘되고 돈이 늘수록 출세까지 선순환 ( 善循環 ) 해방 후 군수 ( 유창석 ) 가 나왔으며 , 학교장 , 공무원 계장 ∙ 과장은 보통이고 , 기업인 외에 유해근은 별 세 개를 단 육군중장에 올랐다 .
유씨는 50 년 안팎 화산면 지배자가 된 반면에 토성 하층민은 이 집안 일꾼들이었다 . 지금은 어떤가 ? 잘 살던 유 씨 서울대학교 나온 사람 많고 장가 잘 들어 처가 부자이며 , 똑똑한 사위 들어오니 오지 화산에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 . 우연인지 필연인지 눌러 사는 유 씨 하나 없다 .
승치 ∙ 성북 ∙ 춘산 ∙ 운곡 ∙ 운산 사람들은 지형상 화평을 지나지 않으면 고산 ∙ 전주에 나갈 수 없어 이게 화산 면민들이 단결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요소임과 동시에 , 일종의 장악력이었다 . 매운탕 갈비탕 끓이고 , 쇠고기 굽는 영업집 음식맛과 값을 물으면 별로라는 뜻 ‘ 글쎄요 ’ 이다 .
2020 년부터 40 억원 들여 기초생활거점사업을 전개한다니 , 이 기회에 도솔산 고성 ( 古城 ) 고쳐쌓아 가치를 드높이며 , 화려강산 문루는 꼭 세워야 한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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