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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9.01.09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55

이서면(伊西面) 이성리(伊城里)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9.01.09 16:52 조회 5,25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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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면민의날. 완두콩 2019. 1/ 총 77 호 / 이 승 철 (55 회 ) 이서면 ( 伊西面 ) 이성리 ( 伊城里 ) ‘ 이성리 ’ 는 고려 때 ‘ 이성현 ( 縣 )’ 에서 온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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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라면 6 〜 700 년 전이니 이 긴 세월동안 지켜낸 이름 이 자체를 두고 주민들 문화인식이 대단하다고 봐야한다 . 완주군에서 세 번째 장한 마을이다 . 화산면 운제 ( 雲梯 ) 나 고산면 고산 ( 高山 ) 을 두고 하는 말이다 .

통폐합 등 변천사는 까다로우니 여기선 접어두고 혹 필요한 분은 < 완주군 전산화 , 완주군청 > 에 들어가면 ① 원이성 ( 元伊城 ) ② 대문안 ( 大門安 . 上金里 ) ③ 마산 ( 馬山 ) 소개가 자상하다 . 원이성에는 완주군에서 가장 오래된 묘가 있다 .

전주이씨 고려인 이문정 ( 李文挺 ) 무덤이다 . 이문정은 증직으로 정당문학 ( 政堂文學 ) 을 했는데 개혁적인 인사이었다 .

한마디로 고려 말 억불숭유 ( 抑佛崇儒 ) 정책을 주장하니 대접받기 어려워 불이익을 많이 받았고 , 결국 고향 마전 ( 麻田 , 馬田 / 마을 밖 ) 에 돌아와 좁은 집안에서 웅크리고만 있을 수 없어 정자를 지어 문학대 ( 文學臺 ) 라 했는데 ,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누정이다 .

문학대 맞은편 언덕에 손자 자 ( 栥 ) 무덤 앞 작은 비석도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 묘표석 ( 墓表石 )’ 이다 . 지금은 전주시지만 얼마 전까지 우전면은 우리 완주군이었기에 여기 소개한다 . ‘ 우리 전주 !’ ‘ 우리 완주 !’ 하며 편 가르는 건 부질없는 소인들의 짧은 생각이다 .

이문정은 말안 ( 馬田 : 마전 ) 이씨의 중시조 ( 中始祖 ) 인데 본인 공적도 크지만 손자 이백유 ( 李伯由 :1352 〜 1399) 가 조선 개국공신 3 등으로 시호는 양후 ( 良厚 ), 나라에서 완산군 ( 完山君 : 졸기 ) 을 봉했다 .

이런 후광이 아버지 ( 蒙 : 몽 )· 할아버지 ( 文挺 : 문정 ) 아래론 손자들에게 미친 걸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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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유 종손 ( 從孫 ) 추탄 ( 楸灘 ) 이경동 ( 李瓊仝 :1438 〜 1494) 이 세조에서 성종조에 걸쳐 좋은 자리 병조참판 대사헌을 했는데 본인 실력과 신임이야 있었겠지만 종조부 이백유 덕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이경동 묘도 원이성 이문정 산소 아래에 있고 여러 가지 석물이 좋으며 , 그중엔 성종대왕 만사 ( 輓詩 ) 비까지 있다 . 묘는 돌로 둘러쌓은 4 각형 고려식이다 . 재실 이성재 ( 伊城齋 ) 잘 지었다 . 재각 뒤편 마을등성이의 오래된 정자나무는 모양이 좋고 무성하다 .

묘 · 재실 · 종토 · 종산으로 봐 이씨네 누군가가 심어 분명히 ‘ 이씨 나무 ’ 일터인데 전설도 주인도 모른다 . 뉘 집안이나 조상이 빛을 보려면 후손이 잘 나 탈 없이 이끌어 가야한다 .

경상도의 이씨 ( 퇴계 ), 김씨 ( 학봉 ), 유씨 ( 서애 ), 조씨 ( 남명 ) 등등은 고택 · 서적 · 교지 · 문집을 지니고 있어 한국학 대접을 받지 않는가 .

여기 묻힌 이문정은 본인 경력으로나 개국충신 손자 이백유 외 이경동 , 이목 ( 李穆 :1471 〜 1498), 이세장 ( 李世璋 :1497 〜 1562) 등등 쟁쟁한 후손들로 봐서는 전해질 유물 ‘ 무언가 ’ 가 있어야하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 .

‘ 역사는 지켜내야 ( 守歷 : 수력 ) 한다 .’ 전주 마전 ( 효자동 ) 이문정 옛집 터 : 전주 제 2 한옥마을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이서면(伊西面) 이성리(伊城里) 사진 1 이서면(伊西面) 이성리(伊城里)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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