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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8.06.04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48

비봉면(飛鳳面) 봉산리(鳳山里)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8.06.04 16:10 조회 5,5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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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48] 비봉면(飛鳳面) 봉산리(鳳山里) 봉 ( 鳳 ) 자 들어 ‘ 비봉면 ’ 이름 좋고 , ‘ 봉산 ’ 지명 장하다 . 봉황은 좋은 새 .

‘ 천리를 날아도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를 않고 ’, ‘ 굶어 죽을지언정 썩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으며 대나무 열매만을 먹는다 .’ 는 길조 ( 吉鳥 ) 이다 . 그래서 청와대는 정문이나 대통령 집무실에 봉황새 문양 ( 紋樣 ) 을 해놓았다 . 그런데 봉황을 잊은 대통령마다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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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통령은 ‘ 최순실 ( 崔順實 )’ 이라는 나쁜 열매 ( 여인 ) 를 잘 못 다루다가 본인은 물론 나라를 요동시켰다 .

비봉면 봉산리는 교통이 좋아 전에 새빤이 ( 새뺑이 ) 재를 넘으면 봉상 ( 鳳翔 ) 전주 땅이고 , 고산 읍내리가 먼지 않으며 , 북행하면 여산 ( 礪山 ) 익산 ( 益山 ) 과 통한다 .

죽산 ( 竹山 ) 뒷산이 봉실산 ( 鳳室山 · 鳳實山 ) 인데 , 봉동 ( 鳳東 ) 사람들이 더 존엄하게 여긴다 . 학림사 ( 鶴林寺 ) 도 있지만 풍수지리 상 「 배 ‘ 산 ’ 임수 ( 背 ‘ 山 ’ 臨水 ) 」 라 할 때 바로 이 ‘ 산 ’ 으로 본다 .

이서구 전설이나 아홉 바위 [ 고인돌 ] 등 모두를 진기하게 여기며 명산 대접을 한다 . 봉산리는 ① 원봉산 ② 죽산 ③ 월암 ④ 사치 ⑤ 용동으로 너른 지역이다 .

월암 ( 월촌 ) 뒷산을 비봉산 ( 飛鳳山 ) 이라 하는데 묘를 쓰는 이마다 봉황 ( 鳳凰 ) 새 명당을 염두에 두었고 , 저마다 자기네가 ‘ 명당 쓴 집안이라 ’ 자부한다 . 어쩌든 이 산에 구영 ( 具瑩 :1584 ∼ 1663) 묘가 있다 . 묘도 묘이지만 묘비가 더 유명하다 .

송시열 (1607 ∼ 1684) 이 글을 짓고 , 송준길 (1606 ∼ 1672) 이 글씨를 썼는데 자손과 유림 측에서 애지중지한다 . 구영 사당은 고산면 백현 ( 栢峴 ) 마을에 있으며 , 고산 6 개면 유생들은 향현 ( 鄕賢 ) 이라 존경한다 .

소금바위 [ 鹽岩 : 염암 ] 의 다른 이야기는 제쳐두고 수도관을 묻어 서해 물을 퍼 올려 이 지역에 염전 ( 鹽田 ) 을 만들어야 한다 . ‘ 염거감 ( 鹽車感 : 준마가 하찮은 소금이나 실어 나르는 안타까운 처지 )’ 을 벗게 하자는 말이다 .

여러 곳에 큰돈 들여 먹고 놀 시설 넘쳐나게 만들었지만 사람 모으는 데는 실패하여 유지하기 어려운 곳 나올 것이다 . 예전에 비봉 대덕탄광 지하수가 냇물을 더럽혀 올챙이 한 마리 없었던 때가 있다 . 이렇게 놀란 주민들이 몇 년 전 돼지막 [ 돈사 : 豚舍 ] 문제로 업자와 엄청나게 싸웠다 .

봉산리 학생들은 고산면 어우리 삼우 ( 三牛 ) 초등학교에 다닌다 . 비봉 7 개리 가운데 봉산 · 이전리는 고산이 , 대치 · 수선은 화산면이 가까워 좋다고 한다 . 학자 ( 學者 ) 들은 전화와 자동차가 있으니 나올만한 말이라고 한다 .

원 봉산 ( 이을순 ) 과 죽산 ( 조재영 ) 에서 면장이 나왔고 죽산에 평양조씨 재실이 있으며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귀물이다 . 성주이씨는 봉산에서 오래 살았으니 집안의 서책이 있다면 보여줘야 한다 . 투자를 많이 한 ‘ 완주힐조타운 ’ 이 성공해야 완주의 체면이 선다 .

서울 살던 이진수 봉산리가 좋아 새집을 짓고 산다 . 비암재 ( 뱀재 ) 는 잿길이 꼬불꼬불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본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비봉면(飛鳳面) 봉산리(鳳山里)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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