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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6.10.31

완주행보

기혼행세_旣婚行世 &lt9&gt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10.31 14:15 조회 5,39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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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실에 혼자 못 가는 여자 택배가 왔다 . 옆동네 산내에서 여자들이 펴내는 잡지 지글스에 글을 썼는데 형편상 고료 대신 지역 농산물로 성의를 보여준다고 했다 .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 퇴근 후 찾기만 하면 되는데 사실 나는 관리사무소에 가기가 두렵다 .

며칠 전 시설관리 남자직원분이 집에 다녀갔다 . 변기 물이 계속 새서 부품을 갈아야 했는데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봐도 인터넷에 나온 것과 구조가 달라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만 했다기 때문이다 .

기혼행세
기혼행세

관리실에 문의했더니 젊은 사람들 집까지 다 손봐줄 순 없다고 , 어르신이나 여자 혼자 사는 집만 도와준다고 했다 . 곱씹어보면 문제적인 말이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넘어갈 수는 있는 정도의 말이다 . ‘ 아저씨 ' 가 외국에 있다고 얼버무렸다 . 그렇지만 집에 들어와보면 눈치챘을 것이다 .

결과적으로는 그분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지만 다른 어려움이 없냐고 묻는 말이 고마워서 보일러와 배수관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몇가지를 질문했다 . 본인은 친절한 마음이었을지 모르나 어깨를 손을 올리며 다른 어려움이 없냐 , 고 묻는 순간 아차 싶었다 .

게다가 그는 내가 물은 기술적 질문에는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 그 바로 다음날 관리사무소에 택배를 찾으러 갔는데 내가 확인서류에 서명하는 그 짧은 순간 또 어깨를 감싸며 ‘ 오늘 일 잘하고 왔냐 ' 라고 , 딴에는 친근함을 표시했다 . 나는 경악했다 . 싫다 . 두렵다 .

언제고 혼자 있는 집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 너무 ‘ 오버 ' 하는 거 아니냐고 ? 불과 얼마 전에 우리는 섬마을 여교사 사건 , 강남역 살인 사건과 같은 뉴스를 접했다 . 남의 얘기까지 갈 것도 없다 .

나 역시 지하철에서 , 학교에서 , 여행지에서 , 회사에서 최근까지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을 뻔했다 . ‘ 여자 ' 인 나는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 당연히 최악을 상상하고 두려워한다 . 혼자 귀농귀촌한 여성이 동네 남성들의 원치 않은 방문을 받는다는 얘기도 숱하게 들었다 .

당연히 희롱 , 추행 , 폭력 사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 ( 공론화되거나 가해자가 처벌되는 경우는 적다 ) 그렇지만 나는 낯선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대는 그 순간에 너무 놀라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 거기서 정색하며 ‘ 이러지 마세요 ' 할 내공을 키우고 싶다 . 그래서 이 글을 쓴다 .

본인은 친하다고 생각하고 농담을 걸지만 듣는 사람은 아니올시다 . 친근함을 표시한 건데 뭐가 어떠냐고 ? 당하는 사람은 무섭고 소름끼친다 . 아이고 어디 무서워서 농담이나 하겠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 그 농담 , 당신에게만 농담이다 . 그 정도 공부는 이제 하셔야 한다 .

혼자 사는 여자만 도와준다는 말이 문제적인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겠다 . 시설관리 서비스는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 할 줄 모르는 남자도 있고 , 할 줄 모르는 여자도 있다 .

할 줄 아는 여자나 남자도 상황에 따라서는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 . 결과적으로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는 게 주로 여자라는 건 왜일까 . 태어날 때부터 여자들에게만 기술이 부족하도록 유전자가 구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덧붙여 나는 ‘ 혼자 사는 여자만 도와준다 ' 는 말은 세상 무섭게 들린다 .

결국 나는 친구 남편에게 부탁해서 함께 갔다 . 부부 연기를 할 자신은 없었지만 또 내게 농이랍시고 걸어오는 그분의 무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 봐라 , 어떤 여자는 관리사무소에도 무서워서 혼자 못 간다 . 혼자 사는 여자들은 집에 남자신발 , 남자속옷을 걸어둔다고 한다 .

나도 선의를 늘 경계하면서 사는 것이 피곤하고 안타깝다 . 그러니 부탁드린다 . 함부로 반말하지 마시고 , 친하다고 생각해서 몸에 손대지 마시라 . 임무를 마친 친구 남편을 관리실 앞에서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 유기농 고구마와 예쁜 컵이 들어있었다 .

현장 사진

기혼행세_旣婚行世 &lt9&gt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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