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음처럼 , 천천히 걸어서 호들갑스럽게 새해 다짐 따위를 하련다 . 작심삼일이면 어떻고 뻔한 얘기면 어떠냐 내가 하겠다는데 .
일터를 떠나오면서 챙긴 짐들이 아직 방 한 켠에 그대로 쌓여있고 언젠가 뭐라도 만들 때 쓰겠지 하면서 조금씩 주워서 모은 나뭇가지 , 헌옷들 , 얼핏 보면 쓰레기로 보이는 각종 잡동사니가 단칸방 여기저기에 굴러다닌다 . 애써 외면한다 . 저이들을 쓸모 있는 물건으로 만드는 게 새해 목표다 .
이제 시간이 많아졌으니 사부작사부작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 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성실함을 존경한다 . 누구에게는 소속 없는 불안함보다 쉬운 선택이겠지만 이번에도 나는 실패다 . 수십 , 십 수 아니 그냥 수년씩 근속하는 분들도 대단하다 .
내가 가장 오래 직장인이었던 시간은 3 년 남짓 . 내게는 입사 3 개월 차가 되면 일이 재미없어서 못해먹겠는 증상을 시작으로 회사다니기 싫어 죽겠는 병이 도진다 .
그래도 제 밥벌이는 해야하는 성인으로서 겨우겨우 임금노동자 생활을 계속하다보면 퇴근 후의 삶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는 반쪽자리 인간이 된다 . 업무시간 중에도 썩 바람직한 모습의 사람이 아니다 . 그 시간동안 위험한 내게서 도망치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감사를 .
이번 사회생활 부적응 사태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 예상했던 실패 , 아쉬운 점이라면 매번 만날 때마다 예정된 저 병증들을 완화시키는 법을 몰라서 숱한 상처들을 주고받으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 앞으로도 또 만날 테고 , 여전히 아픈 시간을 보낼 테지 . 어쨌건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없고 , 시간이 남아도는 , 아주 가끔 짧은 주기로 찾아오는 내 인생의 황금기 . 우선 바스러진 몸을 돌볼 계획을 세운다 . 스트레칭과 맨손체조로 홈트레이닝을 할만큼 훌륭한 사람이 못 되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 체육관까지 갈 교통수단이 애매하니 중고차도 산다 .
운동량을 자동으로 셈해서 체중관리도 해주는 각종 전자기기들을 사들인다 . 이러려고 돈을 벌었다 . 쓰고 싶은 곳에 돈과 시간을 쓰는 취향 소비 . 그렇게 지난 직장생활로 모은 가산을 탕진하고 저자본 무소득 저소비 생활자로 지낼 채비를 했다 .
그래도 내게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 시간을 들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골라서 한다 . 싫어하는 일은 조금씩 시간을 더 들여서 질리지 않을 만큼씩만 한다 .
베란다에 설치했다가 실패한 새들의 쉼터도 다시 만들고 싶고 , 다 써가는 치약과 콩향초도 만들어야 한다 . 나뭇가지로 만든 옷걸이도 매끈하게 마감 작업을 더해야한다 . 헌 옷으로는 책상다리에 신길 양말과 빨래통과 씽크대 밑에 깔 매트를 짜고 싶다 .
붙박이장 안에 전등도 달고 , 화장실 환풍기도 직접 교체하고 전등과 하나로 물린 스위치도 분리해볼 작정이다 . 보일러 청소도 해보고 싶다 . 내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고생했던 친구들에게 마음을 담아 손편지도 쓸 것이다 . 심심할 시간이 없다 . 할 일과 손 갈 곳 투성이다 .
기성품을 사는 대신 품을 들여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 줍거나 얻거나 뺐는다 . 술과 담배를 산다거나 도시로 영화를 보러나가는 등 돈이 들어가는 행동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다 .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는다 . 위에 적은 일들은 다 하고 싶은 일들이니 하면 즐거워지는 취미생활 같은 것 .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고 음식은 직접 해먹는다 . 돈 대신 시간을 쓰면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지금 있는 돈으로도 몇 달은 버틸 수 있다 . 살 공간을 돌보면서 이런 백수 생활을 해본적은 없지만 떠돌이 백수 경력이 있으니 이번 도전과제도 궁리하면서 적당히 살길을 찾을 거다 .
천천히 걸어서 , 처음 마음을 기억하면서 . /바닥 (badac) 이보현 귀촌인 .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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