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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4.04.19

영미씨의 육아일기

엄마의 다짐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4.04.19 15:22 조회 5,39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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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 꽃 양귀비를 심었다. 심고 나서 보니 몇 개가 누렇게 떠 있었다. 옮겨 심었더니 힘들어서 죽었나? 파내 버렸다. 그런데 지난 주 부터 쑥쑥 파란 잎이 올라와 누런 잎들은 저절로 떨어진다. 허걱. 그때 그 놈도 그냥 두었더라면 따뜻한 봄볕과 봄비를 맞아 혹시 새잎이 돋아나지 않았을까?

누런 잎만 보고 쏙아 냈던 것이 후회됐다. 우리 제하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 배밀이를 하던 아이가 엉덩이를 치켜들어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무릎을 세워 기다가 잡고 일어서 옆으로 한발씩 뗀다. 이런 변화가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모습을 전하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가 잡고 일어나, 옆으로 한발씩 옮기는 모습에 가족 모두 응원하고 환호했다. 목욕을 시키다 보니 이마에 거무스름한 멍이 보였다. 어디 부딪힌 모양이다. 잡고 일어서다가, 발을 옮기다 넘어지곤 한다. 이리 저리 ‘쿵쿵’ 실패의 연속이다.

어떨 때는 자지러지게 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또 일어난다. 아플 만도 한데 또 일어나고 또 발을 옮기고 계속 반복한다. 그렇게 주저 없이 수백 번, 수천 번 시도한 끝에 아이는 잡고 일어섰고 또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가 두발로 내게 달려오겠지! 상상만 해도 설렌다.

우리 부부는 그런 모습에 늘 신기하고 대견해하며 응원한다. 아이의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아장아장 걷던 아이는 초등학교를 가고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될 텐데 그때까지 이런 마음일까? 늘 반짝반짝 예쁘기만 한 아들일 수 있을까?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둔 지인이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때마다 나는 옆에서 아들 편을 든다. 그런 내게 “나도 우리 아들이 제하 만 할 때는 안 그랬어. 영미씨도 나중에 제하에게 잔소리 안하나 보자.”라며 내가 변할 거라고 장담한다. 그럴 때면 나도 자신이 없다.

아들이 속 썩이고 제멋대로 하면 나도 우리 아들이 짜증나고 미워지겠지? 그래서 “자식 효도는 어릴 때 다 한다.”는 어른들 말처럼 지금 이때 받은 기쁨과 행복으로 키우는 거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지금처럼 아이의 변화가 기대되고 지금의 실패를 늘 응원하는 멋진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누런 잎이 나왔다고 얼른 솎아 내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만 내지 않으면. 내 기준에 노랗게 시들어 보이는 잎도 뿌리내리기 위해, 새봄을 맞아 새싹을 틔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라는 걸 몰라주지 않으면. 언젠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되겠지.

최근에 읽은 한 소설에 나온 구절인데 이 글을 잘 기억해두고 나도 이렇게 늘 아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의 마음으로 옮겨 적어 본다. “엄마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엄마는 맨날 내가 옳다고 하잖아? 하니까 엄마가 그러셨어요. 그러니? 미안하구나.

하지만 난 언제나 네가 옳은 거 같아. 난 솔직히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안젤로. 하지만 혹여 네가 잘못한다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해주고 싶어.

그래야 네가 정말 잘못했을 때 혼자 잘못한 듯 외로워지지 않을 거잖아...혼자만 잘못한 것 같이 너무 외롭지 않게.” (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한겨레 출판사) /고산 제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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