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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02.24

농촌별곡

사색여행이 된 뒷산 나들이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2.24 13:29 조회 40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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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여행이 된 뒷산 나들이 설연휴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다 . 벼농사를 짓고 , 그것도 농한기에 들어선 농사꾼에게 연휴며 공휴일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 관계 ’ 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 명절을 맞아 떨어져 지내던 피붙이들이 잠시나마 회포를 풀 수 있는 것은 연휴 덕분 아니던가 .

그나마 차례 지내고 세배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뿔뿔이 흩어지는 게 흔한 풍경이고 보면 그 끝 무렵에 묻어나는 씁쓸함도 여간 아니지 싶다 . 이런 씁쓸함을 달랠 겸 동네 친구들과 고창 방장산을 등반하기로 했었는데 때마침 산불 예방기간이라 입산이 금지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

일상에서 벗어나 바람이나 쐬려던 참이었는데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 그래도 동네 뒷산을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 한 시간 남짓 뒷산 나들이는 산행이라기엔 심심하고 산책이라기엔 제법 땀이 흐르는 행차다 . 몇 해 전 심혈관계 이상증세가 도지면서 유산소운동이랍시고 시작한 일이다 .

한여름과 농번기를 빼고 매일은 아니라도 틈날 때마다 땀을 낸 덕분인지 지금은 증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 그러나 몸 쓰는 일을 싫어하는 기질이라 건강회복을 위해 쓴 약 먹듯 운동하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 물론 무병장수를 지고의 목표로 삼은 건 더더욱 아니다 .

돌아보면 ‘ 인생 제 2 막 ’ 으로 생태적 삶을 일궈보겠노라 귀농을 한 지도 이제 20 년에 가깝다 . 그 세월을 따라 날렵하던 것들이 많이 뭉툭해지고 , 싱그럽던 것들은 더러 덤덤해졌을 것이다 .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그만큼 무디어졌다 .

이제 어쩔 수 없이 제 2 막을 지나 제 3 막에 접어들 준비를 할 시점임을 절감하게 된다 . 이른바 ‘ 노년 ’ 이라 불리는 시간 . 노년기는 비단 건강문제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생애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이 점에서 얼마 전 우연히 손에 든 < 나이듦에 관하여 >( 도서출판 비잉 ) 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 저자인 루이즈 애런슨 ( 미국 노인의학 전문의 ) 은 이 책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과 진단을 제시한다 .

노년기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듯 불행한 것만은 아니며 ,( 실제로 청장년층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고 한다 ) 노년의료서비스는 완치나 생명연장보다 인간존엄과 삶의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 무엇보다 ‘ 죽음 ’ 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바가 있다 .

같은 맥락에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통찰이 아니라도 인간은 늘 미완인 불확정적 존재이며 확실한 건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 . 그래서 인간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니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회피하거나 망각하지 말고 , 매 순간의 삶을 의미 있게 실현하라는 것이 하이데거가 전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 지난호에 ‘ 기력이 닿는 한 벼농사를 계속 짓겠노라 ’ 했었다 . 늘그막까지 물질적 욕망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인 이는 없을 것이다 .

설마 벼농사 안 짓는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칠 일이야 있겠는가 . 그렇다면 인생 제 3 막에서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는 남은 삶을 아름답게 채우는 일이 아닐까 .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서 나의 뒷산 나들이는 언제부턴가 ‘ 유산소운동 ’ 을 넘어서게 되었다 .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일보다 세계와 삶의 근원을 찬찬히 톺아보는 사색여행으로 바뀐 것이다 . 그 시간은 이제 입에 쓴 약처럼 부담스런 운동이 아니라 손꼽아 기다리는 일과가 되었다 . 공자 가라사대 조문도석사가의 ( 朝聞道夕死可矣 ) 라 했다 .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 .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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