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논배미로 나갈 시간 모내기가 시작됐다 . ‘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 ’ 는 그 바쁜 와중에 틈을 내어 이 글을 쓰고 있다 . 모농사가 반 농사요 , 모내기가 끝나면 벼농사 8 할은 마친 셈이 된다 .
하여 벼농사두레 공동작업 ( 두렛일 ) 은 못자리 만들기와 모판 나르기가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 두레의 아름다운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 일이 가장 고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달포 전 조성한 물못자리에 앉힌 볏모는 그 사이 별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
모내기는 다 자란 이 모들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배미에 옮겨 심는 공정이다 . 그러자면 모를 잘 심을 수 있도록 ‘ 본답 ’ 을 꾸며야 하는데 이를 ‘ 논배미 만들기 ’ 라 한다 . 그 과정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 . 먼저 우거진 풀을 베어내고 물을 잘 가둘 수 있도록 논둑을 손봐야 한다 .
요즘은 ‘ 논둑 조성기 ’ 를 트랙터에 매달아 기계의 힘으로 해치우는 게 보통이다 . 하지만 올해는 여러 사정 때문에 우리는 손작업으로 이 일을 해내야 했다 . 예초기를 둘러매고 억센 논풀을 치고 , 한 삽 , 한 삽 흙을 떠 논둑을 다졌다 .
그러고 나면 로터베이터 ( 로터리 ) 를 매단 트랙터가 논을 삶게 된다 . 물을 대고 논바닥을 잘게 부숴 흙탕물을 일으킨 뒤 판단하게 고르는 일이다 . 사나흘 동안 흙탕물이 가라앉고 끈적해지면 모를 낼 수 있는 알맞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
올해는 이렇듯 논배미를 만드는 과정에서 물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다 . 지난해 장마 통에 안밤실 여섯 배미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 ( 분노제 ) 둑이 무너진 탓이다 . 그 바람에 물을 가두지 못했고 , 복구공사에 들어간 상태지만 연말에나 완공된다는 소식에 시름이 컸다 .
행정기관에 호소하여 임시변통으로 물막이를 하고 양수기를 설치했지만 역시나 물이 모자라 양수기 조작하랴 물꼬 단속하랴 오락가락 애를 태워야 했다 . 어렵사리 써레질을 마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 올해 처음으로 벼농사를 시작한 새내기 경작자들 또한 농작업이 여간 힘들지가 않았으리 .
하나부터 열까지 선배 농부들의 도움말에 기댈 수밖에 없어 답답한 노릇이었을 테다 . 게다가 처음 해보는 예초기 질에 , 논둑 삽질 , 물꼬 관리 따위 무척 낯선 작업이니 실수연발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 뭘 모르니 그만큼 몸뚱이가 고생일 수밖에 . 어쨌든 이들 또한 어렵사리 모내기 준비를 마쳤다 .
이제 모내기 공정의 하이라이트인 모판 나르기 . 바로 어제 일이다 . 작업 부담이 큰 만큼 사정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모여 올해도 마흔을 헤아리는 벼두레 회원과 고산고 교사 - 학생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일손을 보탰다 . 늘 하는 얘기지만 흥겨운 잔치판에 , 너무 고마운 일이다 .
작업내용은 간단하다 . 못자리에서 모판을 떼어내 트럭 짐칸에 실어서 여러 논배미에 내려놓는 일이다 . 간단한 작업도 수백 , 수천 번 반복하다 보면 힘이 달리고 고단하게 된다 .
늦은 오후가 되면 결국 체력이 바닥나고 , 마지막으로 논바닥에 붙은 멍석망을 떼어내자면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한다 . 그나마 날씨가 흐리고 간간이 가는 비까지 내려주어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
늘 그렇듯 무리하지 않고 왁자지껄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틈틈이 새참도 챙기는 즐거운 노동이었다 . 그리고 오늘 모내기다 . 퇴약볕 아래 이앙기를 모는 운전자와 모판을 대주는 보조자 딱 두 사람이 진행하는 따분한 노동 . 다시 논배미로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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