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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03.07

농촌별곡

나를 밀고 가는 세 가지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03.07 11:40 조회 5,2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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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 봄이 와 있더라 . 이번 겨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 지금 드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 여느 해 같았으면 느긋하게 농한기를 누렸을 텐데 , 이번엔 사정이 달라 내내 종종거려야 했다 . 무엇보다 집짓는 일에 매여 한겨울을 공사장에서 지내왔다 .

바쁠 것 없는 농한기에 공사가 진행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 하는 일이라야 이른바 ‘ 개잡부 ’ 노릇으로 온갖 허드렛일이 대부분이다 . 하지만 여간해선 해보기 어렵다는 ‘ 내 집 짓기 ’ 를 , 그것도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는 건 보통 귀한 경험이 아니지 싶다 .

그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지금은 그게 다 순식간으로 여겨진다 . 지난겨울을 달군 또 하나의 이슈는 박근혜 퇴진 싸움 .

하는 일이라야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함께 하는 게 전부지만 , 돌아보니 지금껏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 개근 ’ 을 이어가고 있어 스스로 대견해진다 . 집회시간이 다가오면 혼자 공사장에서 빠져나와 전주시내로 향하곤 했는데 , 남아서 일할 목수들을 생각하면 등짝이 화끈거렸다 .

두 차례 열린 ‘ 서울집중집회 ’ 때도 상경버스에 무거운 몸과 마음을 실었더랬다 . 탄핵심판이 임박한 지금 , 그 결말이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 그렇게 석 달을 보내고 나니 농사철이 눈앞이다 . 그 새도 바삐 움직였으니 올해는 새삼스레 몸을 풀 일도 없게 됐다 .

더욱이 벼농사모임에서 진행한 ‘ 농한기강좌 ’ 도 착착 진행돼 막바지에 이르렀다 . 그 동안 전문가와 선배 농사꾼을 모시고 유기농 벼농사 , 농업농촌의 현실과 전망 , 여성농민으로 살아가기 , 토종작물과 자연농 , 유기농 채소농사 , 농촌에서 손수 건강 돌보기 등을 공부해왔다 .

이제 농업제도와 이 고장 고산의 역사를 다루면 강좌는 모두 마무리된다 . 바로 그 시점에서 , 애초 계획했던 대로 우리는 봄 소풍을 겸한 수련회를 다녀왔다 . 바로 엊그제 , 변산 바닷가였다 . 지역농업 전문가를 불러 ‘ 집락영농 ( 공동체농사 )’ 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

이어 늦은 밤까지 벼농사모임의 발전방안과 진로를 놓고 열띤 대화를 나눴다 . 저마다 놓인 상황이 다르고 , 농사계획도 아직 세우기 전이라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 그래도 서로를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 농사현실과 전망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니 비관할 일은 아니지 싶다 .

모임의 체계야 여건만 성숙되면 언제라도 갖출 수 있어 조바심 낼 것도 없다 . 사실 모임을 가동한지 3 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1 박을 하는 수련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 그만큼 우리는 천천히 가고 있는 것이다 . 이튿날 아침엔 다들 채석강 해변으로 나갔다 . 바로 거기에 봄이 와 있었다 .

새봄의 바닷바람이 콧속을 가지렸다 . 쏴 ~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쌓인 시름을 털어내고 , 끼룩끼룩 ~ 펄떡이는 기러기의 저공비행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 5 리에 걸쳐 펼쳐진 층암절벽은 영겁의 세월을 견뎌왔겠지 . 사람 사는 일 , 급할 게 무엇인가 . 다시 삶의 현장이다 .

이 글을 마무리하는 대로 나는 또 집짓는 공사현장으로 나간다 . 다음 주말에도 나는 투쟁의 현장에 서 있을 것이다 . 남은 두 차례 농한기강좌를 진행하고 나면 농사현장에 나서게 된다 . 3 월 , 비로소 시작되는 달 . 지금 나를 밀고 가는 이 세 가지가 잘 갈무리되고 아름다운 새 세계가 펼쳐지기를 .

/차남호(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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