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멍굴 영화제 - 진화의 서막 평온하던 시절이 있었다 . 흥청망청의 겨울 , 한 후배가 놀러왔다 . 그는 영화를 찍는 자라고 했다 . 그에게 광활한 너멍굴에서 영화상영을 약속했다 . 영화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
오늘의 이야기는 너멍굴 영화제의 시작 , 그 평온하던 시절의 풍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2016 년의 마지막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 귀농의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그 날 , 허건이라고 하는 후배가 오겠다고 했다 . 그는 진씨가 나온 다큐를 보았다고 했다 .
기실 허건과의 사이는 대면대면 하였다 . 그의 방문은 급작스러웠지만 그때의 진씨는 여유와 심심함이 넘쳤다 . 진씨는 고산의 명물 , 소고기를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접하곤 하였는데 ,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 소고기와 와인을 그야말로 퍼부었다 . 신나던 그 날의 대가는 참혹하였다 .
다음 날 어지러움 속에서 진과 건은 하서방이라는 칼국수 집을 찾았다 . 칼칼한 국물을 마시며 영화이야기를 나눴다 .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그는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기가 쉽지 않다 말했다 . 진은 너멍굴의 땅은 넓으니 첫 상영의 장소로 어떠한가 물었다 .
건은 진짜이냐 물었고 , 겉멋이 잔뜩든 우리는 까짓거 하지라고 말해다 . 바야흐로 영화제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 너멍굴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진수성찬이라고 불리는 농업이었다 . 그 중에는 된장과 고추장이 상품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
고도의 발효식품을 만들기 위하여 너멍굴 진수성찬은 발효식품부장이라는 요직을 임명할 필요가 있었다 . 진씨의 동기 중에는 윤지은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손맛을 농활을 통해 이미 학내에 정평이 자자하였다 . 결국 요직에 임명된 윤은 발효식품부장으로 곧잘 너멍굴을 방문하였다 .
그러던 중 영화제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고 , 진은 윤이 영화에 흥미가 있음이 생각났다 . 너 영화제 한 번 만들어 볼꺼니 ? 질문은 직설적이고 도발적이었다 . 윤은 진중한 자였는데 , 유독 영화제만큼은 흔쾌히 수락되었다 . 3 인이면 세상을 만든다고 했다 .
3 인의 도원결의는 아무 것도 없는 너멍굴에 풍파를 일으켰다 . 건은 서울에서 영화프로그램을 전담하였고 , 진은 상영장의 전반을 맡으며 , 윤은 전체판을 조율하고 기획하였다 . 첫 영화제이니만큼 그들은 작은 것을 추구하였다 . 우리끼리 백만 원씩 모아서 장비나 빌리고자 푼돈이 모였다 .
모인 돈을 보며 윤은 제안했다 . 좀 부족한데 동아리 지원금이나 받아보자 . 진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 군의 지원은 아마 작은 영화제였지만 이름만은 거창했던 우리의 직함이 한 몫을 한 듯하였다 .
준비위원장 윤과 조직위원장 진 , 그리고 프로그래머 건으로 구성된 3 인의 영화제는 모든 것을 3 인으로 함에도 거대한 조직으로 위장에 성공한다 . 지원은 물적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 군수가 영화제에 흥미를 보였다 . 응원의 메시지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지 얼마 후 , 군의 수장은 방문을 약속한다 .
너멍굴 영화제는 언제부터인가 1 회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커져버렸다 . 아무렇게나 좌판을 벌이려고 했던 우리는 부랴부랴 땅을 말리고 , 조명을 준비했다 . 굿즈와 프로그램도 준비할 일이 태산이었다 . 그러나 걱정이 없었다 .
우리는 커진 판을 운영하기 위해 다른 일꾼들을 모아뒀는데 그들은 너멍꾼이라 불렸다 . 십 수명의 너멍꾼이 영화제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 그들은 영화제의 성공을 다짐하며 영화제 하루 전 날 , 축배를 들었다 . /진남현 (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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