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 칸씩 늘리는 재미에 평생을 열심히 살았지 문이순 어르신 “ 그 집은 참 부지런해 .” 교동마을 사람들에게 문이순 (81) 어르신은 익숙한 이름이다 . ‘ 동에 번쩍 , 서에 번쩍 ’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 마을 이곳저곳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
이날도 이순 어르신은 이른 아침 집 뒤에 있는 텃밭에 생강을 심고 , 버스 타고 전주 시내까지 나가 기름을 짜왔다 . “ 버스정류장 바로 옆 작은 텃밭 있잖아 . 거기 원래 작은 방앗간이 있었어 .
그래도 기름 짜려면 지금처럼 전주까지 나가야 했지 .” 이순 어르신은 들기름을 짜러 간 김에 직접 농사지은 콩도 볶아 왔다 . “ 한 번 볶은 콩에 간장과 물엿을 넣어 졸이면 더 맛있는 콩장이 된다 ” 고 설명한 그는 아직 훈기가 남은 콩을 그릇에 담아 맛보라며 권했다 .
인심만큼 고소한 콩을 먹으며 이순 어르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 “ 원래 고향은 구이중학교 근처에 있던 마을이야 . 거기서 스물한 살에 다릿골로 시집와서 둘째 며느리인데도 시부모 , 시동생까지 다 모시고 살았어 . 바깥양반이 벌이가 없으니까 내가 다 했지 .
채소 농사 , 집안 살림살이에 전주 팔복동에 있는 식당까지 나가서 10 년 넘게 일했어 . 월급 23 만 원 받으면서 딸 둘 , 아들 셋을 다 키웠네 .” 5 남매를 키우는 동안에도 이순 어르신의 손은 쉬질 않았다 . 일하던 식당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창고도 짓고 , 집도 두 차례 고쳤다 .
그는 “ 그때 조금만 더 보탰으면 새집을 지었을 것이다 . 고생했지만 살림이 조금씩 나아질 때마다 재미를 느꼈다 ” 며 웃었다 . 대가족이 시끌벅적하게 살던 시절은 다 지나고 , 지금은 둘째 아들만이 이순 어르신과 함께 지내고 있다 .
큰아들은 익산에서 2 주에 한 번씩 찾아오고 , 서울에 사는 나머지 자녀들도 틈날 때마다 어르신을 뵈러 내려온다고 한다 . 전문대를 마친 작은딸과 현대에서 일하는 막내아들은 그의 자랑 중 하나다 .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이순 어르신은 여전히 마당과 텃밭을 오간다 .
계절 따라 옥수수 , 쪽파 , 배추 , 생강 등을 심고 , 가을이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품앗이로 김치를 담근다 . 또 요즘은 월 , 수 , 금요일에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도 하고 있다 .
시간을 그냥 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이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 제일 부지런한 이순이 ” 라고 말할 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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