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종기, 고산로 100 사람들 한 지붕 열 가족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시간, 고산로 100 건물에는 열 개의 다른 삶이 깨어난다. 이른 새벽, 세탁소 수선대에 불이 켜지고 방앗간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골목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2층으로 이사한 완두콩을 비롯해 유별난 딸기농장, 방앗간, 지업사, 미용실, 김밥집, 건강원, 청년공간까지 세대도, 업력도, 향도 다른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정답게 살아가고 있다. ■ 아침을 여는 고소함과 따뜻한 수증기 새벽 6시가 되면 참맛나기름집 문이 가장 먼저 열린다.
박정순(70) 어르신은 오늘도 깨를 저온에서 볶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고소한 냄새는 새벽 골목을 가득 채운다. 정순 어르신에게 이곳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다. “손님들 얼굴 보면 반갑고, 그냥 와서 앉아 이야기 나누는 게 재밌어.
여기는 단골들 사랑방 같은 곳이지.” 기름집 옆, 커다란 통창이 눈에 띄는 동일세탁소에는 이영권 사장이 다림질 삼매경에 빠져 있다. 바깥 배관을 통해 뜨끈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잠시 후, 고산에 사는 20대 청년이 수선을 맡기러 이곳을 찾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곳만 이용했다는 청년이 “최대한 빨리 수선해 달라”고 부탁 하자, 사장님이 “문제없어, 금방 처리해줄게.”라며 웃었다. 오랜 단골의 티가 난다. ■ 점심 때의 소람함과 물건 정리하는 차분한 손길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되자, 건물 가운데 김밥천국에도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손님들은 김밥을 포장해가거나 음식을 주문한 뒤, 주인장과 도란도란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기다리는 풍경이 익숙하다. 그 옆으로는 점심 예약을 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횟집 주인 김정곤 사장이 수조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활기 넘치는 점심 식사를 준 비하는 손길들이 고산로 100의 한낮을 채운다. 이러한 소란함과는 대조적으로 고산지업사에서 는 백응용(85) 사장이 차분하게 장사를 시작했다. 장판과 벽지, 마루와 봉투를 정리하며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제일 잘 나가는 건 봉투야.
찾기 쉽게 항상 정리를 해야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쌓아온 기억과 단골 손님들의 발걸음을 떠올리며 백 사장님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번진다.
■ 활력 속에 웃음꽃 피는 오후 기온이 한층 따뜻해진 오후 시간, 꽃미용실은 오전부터 첫 차를 타고 방문한 단골을 맞이하고 이어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다른 무늬의 파마 모자를 쓰고 앉아 수다를 나누는 손님들의 얼굴이 화기애애하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의 정보와 정을 나누는 또 하나의 사랑방이다. 그 옆 붕어나라의 주인장 역시 새로 잡은 민물고기를 손질하거나, 신선한 물고기를 사러 온 손님을 맞으며 바쁜 오후를 보내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주)유별난을 운영하는 박성호 씨 등 세 명의 청년농부 사장들은 이전 가게인 순의상실 간판을 그대로 둔 채 영업 중이다. 지금 농장에서 한참 통통해지는 딸기를 수확해 곧 매대에 올릴 예정이다. 생딸기뿐만 아니라 냉동딸기와 가공품도 취급한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속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한 건물 안에서 느껴지는 정겨움과 활력은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고산로 100 안에서는 단순한 상거래를 넘어 오랜 시간 쌓인 관계와 소소한 일상이 하루를 만들어 간다.
기름 냄새와 슉슉~ 뜨거운 수증기, 소란한 식사 소리와 백발의 어르신이 정리하는 봉투, 그리고 파마 모자 아래의 웃음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12월, 고산로 100의 풍경이다.
[box] 고산로 100 건물은 이들 열 가게를 품은 고산로 100 건물은 1975년에 1층이 지어지고 몇 년 후 2층으로 증축됐다. 합쳐서 대략 660㎡(200평) 가량 된다. 고산면 소재지를 동서로 관통하는 구시가지 중심 도로변에 비교적 규모 있게 서 있다.
건물주 고병희 씨는 “한 번 입주하면 오래 계시는 게 우리 가게 사장님들의 특징”이라며 “이분들이 대박 나 돈 많이 버는 게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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