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 2022.07.21

여름놀이터 운주 원금당마을

피서 성수기 앞둔 원금당 마을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2.07.21 16:09 조회 2,929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물 깨끗하고 시원하니 어서오시랑께요! 천등산을 병풍삼은 운주 원금당마을은 사시사철 마을 앞 냇가에 맑은 물이 흐른다 . 고당리 피묵마을과 금남정맥의 왕사봉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다 . 원금당마을의 여름이 특별한 이유다 .

여름 피서철이 시작되면서 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 펜션과 수영장 등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9 월까지 평일 , 주말 할 것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다 . 부지런한 계절 속 사람들 매미 울음소리가 시골의 적막을 깨우는 때가 왔다 .

20220702 123319
20220702 123319

원금당마을 초입에 있는 다리 ‘ 금당교 ’ 를 건너 마을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무더운 더위도 한풀 꺾인다 . 마을의 둘레길을 걷는 내내 그 옆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 성수기를 코앞에 둔 원금당마을은 평일과 주말의 풍경이 뚜렷하게 나뉜다 .

아직 휴가철이 아니라 평일에는 비교적 여유롭지만 주말엔 마을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 7 월의 첫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 이날 네 식구와 반려견까지 함께 원금당마을을 찾은 김동규 (48· 익산 ) 씨는 “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 편인데 여름엔 주로 운주계곡을 찾아온다 .

운주는 펜션 , 수영장만 있는 게 아니고 앞에 계곡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피서하기 좋다 ” 고 말했다 . 대전에서 온 전영규 씨는 “ 차로 40 분이면 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서 자주 오는 편이다 .

봄에는 푸르른 나무 , 여름엔 시원한 계곡 , 가을에는 단풍 , 겨울에는 대둔산의 설경을 볼 수 있기에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 ” 며 웃었다 .

마을회관 인근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 마을에서 3 년째 식당 ‘ 금당가든 ’ 을 운영하는 이남학 (57)· 박경화 (57) 부부는 직접 키운 토종닭으로 요리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부부는 “ 토종닭인데 질기지 않고 쫄깃하고 잡내가 안 나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 같다 .

가게에 평상이 70 개 정도 있는데 성수기 주말에는 항상 만석이고 바쁠 땐 평일에도 자리가 없다 ” 고 말했다 . 토종닭 요리로 유명한 금당가든을 운영하는 이남학 ·박경화 부부. 평상 대여 및 물놀이 시설이 있는 ‘ 법용유원지 ’ 는 15 년째 더위에 지친 이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

윤석철 (74) 어르신과 그의 아들 윤여정 (37) 씨가 함께 운영 중이다 . 여정 씨는 “ 시내와 멀리 떨어져있다 보니 바쁠 때 직원을 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 그래서 가족간에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마을에 청년이 유입된다면 좋겠다 ” 고 말했다 .

이렇듯 마을 주민들은 여름철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 해마다 사람이 모여드는 상황이 모두에게 좋으리란 법은 없다 .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강충구 (78) 노인회장은 그간 피서객들로 인한 고충을 털어놨다 .

그는 “ 피서객들이 골목에 차를 주차해놓는 바람에 통행에 불편이 있고 밤에는 폭죽 소리와 고성방가에 잠을 뒤척일 때도 많았다 . 주민들이 가까이 있는 만큼 다 같이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 ” 고 당부했다 .

원금당마을 초입에 있는 금당교 고픈 배 채울 온갖 별미는 덤이라오~ 산에 기대어 온 세월들 암벽등반 명소로 꼽히는 천등산은 원금당마을과 가까이에 있어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높다란 산이다 . 산악인들에겐 암벽 타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마을 주민들에겐 저마다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

어르신들은 산제당에 가서 자식들의 건강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아낙들은 바구니를 들고 나가 상수리를 주워오곤 했다 . 김연화 (49) 부녀회장은 “ 산 능선 따라 상수리 주우러 다니기도 했고 ‘ 으름 ’ 이라는 열매도 땄다 . 마을 주변에 산이 많다 보니 지천에 먹을 게 널려 있었다 ” 고 말했다 .

마을 사람들은 산지에서 먹을 것을 얻기도 했지만 논밭을 일굴 땅이 부족하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 강충구 노인회장은 “ 우리는 논밭이 부족해서 대농이 없는 대신 산에 감 농사를 지어서 큰 도시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 나 또한 그렇게 20 년 가까이 외지 생활을 했다 ” 고 말했다 .

마을 골목 끝에 빨간색 우체통이 보였다 . 그 뒤편의 집은 윤영식 (65) 씨의 옛집이고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1,000 평 남짓한 밭도 그가 소유하고 있다 . 그는 퇴직한 뒤 대전에서 운주까지 44 ㎞ 거리를 달려 매일 같이 찾아온다 .

영식 씨는 “ 옥수수랑 고추 농사를 짓는데 요즘 잡초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 마을이 조용하고 물도 맑아서 퇴직하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 고 말했다 . 퇴직한 뒤 대전에서 원금당마을까지 44㎞ 거 리를 달려 매일 찾는 윤영식 씨 이맘때 한낮의 마을회관은 주민들로 북적인다 .

이른 새벽 농사일을 마친 사람들이 오후 더위를 피하려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모인 사람들이 담소를 나눈다 . 장마인데 비가 적게 내려 걱정이라는 이야기부터 외지로 일하러 간 아들과 딸 걱정이 줄줄이 나온다 .

경기도 안양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여자 어르신은 “ 집에 있으면 덥고 심심하니까 회관으로 놀러 나온다 . 그래도 다른 마을에 비하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단합이 잘 되는 편인 것 같아서 살맛난다 ” 고 말했다 . 원금당마을회관 바로 앞에는 윤석환 (65) 씨가 산다 .

석환 씨는 젊은 시절 10 년간 외지에 살며 여러 가지 일을 했다 . 그러다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 그는 “ 고향만큼 마음이 편한 곳이 또 어디 있겠나 . 앞으로의 여생은 자연 속에서 물들고 싶다 ” 며 미소 지었다.

[ 박스 ] 원금당마을은 운주면 금당리 원금당마을은 1914 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리 , 옥배리 , 궁동 , 대궁동을 통폐합하여 금당리라 하였고 1935 년 운주면에 편입되었다 .

현재 마을에는 36 가구 , 총 68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연령대는 60~70 대가 가장 많고 아이가 있는 집은 두 가구다 . 원금당마을은 본래 고산군 운동하면의 지역으로서 금당사가 있어 ‘ 금당 ( 金 쇠금 塘 못당 )’ 이라 불린다 .

금당리 금당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절터로 과거에 승려가 많았으나 파평윤씨들에 의해 쫓겨났다고 전해진다 . 『 사탑고적고 寺塔古蹟攷 』 에는 ‘ 금당사가 천등산에 있다 ’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 『 고산읍지 高山邑誌 』 에는 ‘ 화재로 폐사되었다 ’ 라고 전한다 .

원금당마을 북쪽 마을길을 따라 100m 가량 가면 도로의 남쪽에 넓은 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금당사지이다 . 현재 절의 구조와 현황 , 범위 등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물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이와 관련된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

원금당마을은 과거 파평윤씨 집성촌이었으나 현재는 이사를 가거나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 남은 가구가 몇 없지만 마을 뒷산에 제각이 남아있어 매년 10 월 시제를 올리는 중이며 현 기준 윤석언 (81) 어르신이 제사를 관리하고 있다 .

현장 사진

피서 성수기 앞둔 원금당 마을 사진 1

첨부자료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