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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0.11.12

선돌마을의 만추

흙집에 사는 박희석-이길순 부부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0.11.12 14:39 조회 3,18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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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짚처럼 따뜻하게 결속 '함께한 삶도 든든' 자식 가르치러 떠났다 13년 전 귀향 "가장 행복 절대 안 팔고 싶은 집" 구름은 하얗고 울긋불긋 물든 산 아래 지향마을 . 코끝이 시리게 추운 날이었다 . 마을 길 따라 개울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옛집이 보였다 .

집 앞에 쌓아 올린 장작과 장독 여럿이 눈에 띄었다 .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던 찰나 , 안에서 분주하게 밥 짓는 소리가 들렸다 . “ 누구요 ?” 인기척을 들은 이길순 (72) 할머니가 물었다 . 곧이어 낯선 객을 마루에 앉히셨다 . 할머니는 스물 한 살에 폭포 너머 위봉마을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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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친정집에서 결혼식 올리고 여기로 오자마자 시어머니랑 남편이랑 함께 살았어요 . 이 집에서 기억은 다 생생해요 .” 가만히 집을 둘러보니 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우둘투둘한 흙벽 , 견고한 서까래와 기둥이 견뎠을 시간들 말이다 . 박희석 (80) 할아버지는 집 지었을 당시를 떠올렸다 .

“6.25 전쟁 때 집이 불 타버려서 움막 같은 걸 짓고 살다가 나중에 이 집을 지었어요 . 산에 올라가 바작에다 흙 담고 지게지고 내려와서 작두에다가 쓸었대요 .

그럼 흙이 보들보들해지는데 그걸 지푸라기랑 엮어가지고 벽에다 바른 거예요 .” 자식들 교육때문에 전주로 나가살다가 13년 전 옛날 흙집으로 돌아온 노부부는 세월을 고스란히 지닌 이 집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하다 1967 년에 지어진 집 구조는 부부가 단촐하게 살기에 알맞다 .

높지 않은 마루를 올라서면 방 두 개가 양쪽에 있고 구석구석 깔끔하지 않은 곳이 없다 . “ 내내 여기 산 것은 아니에요 . 애들 갈칠라고 전주로 나가서 한 45 년은 살았어요 .

골짜기 사는 사람들은 애들 때문에 다 어쩔 수 없다니까요 .” 부부는 큰 딸이 초등학교 5 학년이 되자 전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 또 아이들 교육을 위해 맞벌이를 시작했다 . 길순 할머니는 섬유공장에서 선별작업을 했고 , 희석 할아버지는 농사 , 토목공사 일을 했던 것이다 .

그리고 13 년 전에 옛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 “ 도시 나가봐야 돈벌이도 없고 맨날 아파트 천장 바라보는 것밖에 더 있겠나요 . 시골 와서 사는 게 어설퍼도 마음은 편해요 . 본 토박이니까 아는 이웃들도 많고요 .” 그렇게 돌아온 옛집에서 부부는 능숙하게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다 .

희석 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해 와서 통장작을 팬다 . 또 할아버지에게 아궁이에 불 지피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 길순 할머니는 밭일부터 해서 온갖 집안일을 한다 . 말끔히 잘 정돈된 집안 곳곳에서 할머니의 부지런함이 보인다 . “ 집에 사람이 안 살고 내버려 두면 허물어져요 .

사람이 발로 밟고 다져야 숨을 쉬나 봐요 . 사람한테 나오는 훈김 ( 훈훈한 기운 ) 이란 게 대단하죠 . 흙벽에 있는 지푸라기는 흙이랑 서로 얽히고 설켜서 집을 따뜻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주고요 .” 흙과 지푸라기가 엉겨 붙은 세월만큼 삶을 함께 한 부부 .

오랜 시간 동안 곁을 지켜온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 가만히 있는 것보단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수줍게 미소를 띠는 모습도 닮았다 . 이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 “ 지금이 제일로 좋죠 . 애들 다 갈쳐놓고 키워놓았으니까요 .

마음은 편안하니 좋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문제죠 .” 같은 질문에 서로 같은 대답이었다 . 흙집을 다른 곳에 팔 생각이 있는지도 물었다 . “ 절대 안 팔죠 . 돈은 금방이면 없어지는데 집은 아니잖아요 .”

현장 사진

흙집에 사는 박희석-이길순 부부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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