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문 밖에 무르익은 가을이 대들보-아궁이 흙집 원형 보존 "훗날 딸이 여기서 살고 싶대요" 이날 일기예보에서 들은 낮 기온은 11 도였지만 체감 온도는 그 이하였다 . 바람이 불었고 공기가 차갑다 . 저 멀리 텃밭에서 바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던 김유옥 (64) 씨가 보였다 .
집 앞에는 말린 수세미가 정갈하게 널어져 있다 . “20 여 년 전 에 이 집을 마련해두고 그때부터 오가고 있어요 . 시간 날 때마다 오게 된 건 5, 6 년 정도 된 거 같아요 . 텃밭 농사를 시작한 것도 그 정도 됐는데 힘들어요 . 오늘은 호박순도 따고 가지도 따려고요 .
남편이랑 우스갯소리로 살 빼려는 사람은 여기에서 일하고 가면 된다고 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빠요 .” 유옥씨가 텃밭에서 적상추를 뜯고 있다 처음 이곳은 유옥씨의 남편을 위한 공간이었다 . 대학 교수인 남편이 방학 때 마다 학생들과 공부할 공간이 필요했고 처음에는 이곳을 공부 공간으로 사용했다 .
부부 외 다른 사람이 잠깐 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별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친구들 모임의 아지트로 사용하기도 한다 . 그야말로 쓸모도 많고 활용도 높은 공간이다 . “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여기에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
여름이면 지천이 파랗고 , 또 집안에 앉아서 창문으로 비 오는 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좋아요 . 빗소리도 듣기 좋잖아요 .” 유옥씨는 오늘 시내버스를 타고 전주에서 한 시간 걸려 마을에 왔다 . 조금 이따인 오후 1 시 15 분 버스를 놓치면 4 시 40 분 버스를 타야한다 .
“ 시내버스를 탈 때 사람이 없으면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 동상은 해가 짧아서 3 시만 넘어가도 해가 꼴깍 넘어가요 . 4 시 40 분 버스를 타고 나가면 깜깜해지죠 .” 겉으로 봐서는 현대식 주택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뭇 다르다 . 오래된 정지문을 열면 아궁이가 있다 .
원래 원형인 흙집을 훼손시키지 않고 대들보와 아궁이 등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 1967 년 만들어진 흙집이다 . 아직 온수가 들어오지 않아 씻으려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아궁이 솥에서 물을 끓여 바가지로 가져다 써야한다 . 불편하지만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불편함이다 .
“ 흙집이라 불도 떼고 싶더라고요 . 편리하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지만 이렇게 그대로 놔두고 싶었어요 .
이런 집에 사는 것보다 이런 집을 가진 친구가 있는 사람이 좋다잖아요 ( 웃음 ) 저희 친구들이 이곳을 좋아해요 .” 특히 아궁이에서 불을 떼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유옥씨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 그을음 가득한 아궁이와 다르게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가을 그 자체이다 .
하나하나 올린 정겨운 돌담위로 울긋불긋한 나무와 파란 하늘이 보인다 . “ 불 떼는 것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잘 못해요 . 집에 손님이 오면 아궁이 솥에 토종닭 한 마리 사서 삶으면 다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
물이 좋은 건지 솥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 유옥씨는 이 집을 좀 더 살뜰히 가꾸고 , 아끼고 싶다 . 어쩌면 그에게 농사는 핑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곳의 집을 한번이라도 더 오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 “ 딸이 나이가 들면 이집에 와서 살고 싶대요 .
그때가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딸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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