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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2.04.20

비봉 소농리 원소농마을

유민상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2.04.20 10:13 조회 2,9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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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 고생했으니 이젠 나무나 가꾸며 쉬려고" 마을회관 맞은 편에 위치한 커다란 차고가 달린 집에는 유민상 (84) 어르신이 산다 . 그는 원소농마을에서 남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데 , 그럼에도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루를 보낸다 .

매일 아침 먼지 쌓인 마당을 쓸고 송아지에게 여물을 먹인 뒤엔 닭과 오골계가 낳은 알을 꺼내둔다 .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정원을 가꾸는 일도 그의 몫이다 . 원소농마을을 찾은 이튿날 , 어르신은 어김없이 화단에 심을 식물을 옮기고 있었다 .

유민상어르신경운기2
유민상어르신경운기2

낯선 객의 방문에도 반갑게 맞이하며 미소 짓는 그는 잠시 쉬어가라며 마당 한쪽을 내어주었다 . 경운기를 운전해 퇴비를 나르고 국화를 화분에 옮겨 심는 유민상 어르신. 역사로 남은 조부의 숭고한 희생 민상 어르신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다 .

그의 조부는 의병 활동을 하다 붙잡혀 15 년형을 선고받았고 , 모진 고문을 받다 9 년 만에 결국 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 유 어르신은 “ 그때 할아버지 열 손가락 손톱이 다 뽑히셨는데 고통이 얼마큼인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 며 조부를 생각하며 잠시 묵념을 올렸다 .

“ 한 번은 할아버지를 포승줄에 감은 채로 일본 순사들이 집으로 처들어왔었어 . 의병 활동 때 쓰는 총이 어딨는지 찾아내려던 것이지 .” 당시 그는 겨우 걸음마를 떼던 나이였다 .

그럼에도 직접 목격한 듯 자세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 역사를 잊지말아야한다 ’ 며 틈틈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 모진 세월도 꺾을 수 없던 우직한 삶 그의 나이 열두 살에는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

주변 마을에 비해 부촌으로 꼽혔던 원소농마을은 전쟁 이후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전쟁이 몰고 온 비극은 주민들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겼다 . 어르신은 “ 전쟁 터지기 전처럼 돌아가기 쉽지 않았다 .

힘들다 보니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고되게 일을 해도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고 말했다 . 그는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부양하고 , 어린 자녀들을 모두 키우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며 어떤 일이든 해야 했다 .

벼농사는 물론이고 수박이며 고추며 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작물이 없을 정도다 . 그는 해방과 내전 , 보릿고개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가늠할 수 없는 지난한 세월을 덤덤히 들려주며 “ 젊었을 때 그렇게 고생했으니까 이제는 나무나 가꾸며 쉬려고 ” 라며 웃었다 .

화분에서 꺼낸 식물을 땅에 옮겨 심었다 . 그가 일군 정원에는 모란 , 할미꽃 , 소나무 같은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가득했다 . 어르신의단정한 장독대와 소들.

현장 사진

유민상 어르신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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