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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2.04.20

비봉 소농리 원소농마을

배병우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2.04.20 09:59 조회 2,9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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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이어진 고향 사랑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넓은 주택 . 울타리에 꽂힌 색색의 바람개비가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경쾌하게 움직였다 . 이곳은 경로회관과 모정 , 버스정류장과 가까워서 항상 집 앞으로 어디론가 오가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

근처 텃밭에선 배병우 (70) 어르신이 삽을 들고 울퉁불퉁한 흙과 돌을 퍼내고 계셨다 . 곧 있을 주차장 공사를 위해 미리 땅을 고르는 것이었다 . 원소농마을 토박이인 병우 어르신은 대대로 같은 집에 살고 , 같은 땅에서 작물을 일궈왔다 . 곧 주차장이 될 이 텃밭도 그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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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는 이웃집을 가더라도 차를 타고 가잖아요 .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차가 있어야 이동이 편할 테고 . 그런데 우리 마을은 길이 좁아서 명절날 두어 가족만 모여도 불편해지더라고요 . 그래서 모두의 편의를 위해 이 땅을 주차 공간으로 내어주기로 했어요 .

가끔 스트레칭을 할 수 있도록 운동 기구 놓을 공간으로도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 그의 조부인 배영일 어르신 또한 마을의 대의를 위해 앞장섰던 선각자로 알려져 있다 .

1929 년 일제강점기 당시 그의 조부는 조경환 전 면장 , 조동환 , 류연흥 , 류준상 등과 함께 근대교육을 위하여 비봉초등학교의 전신인 월봉학교를 설립했다 . 당시 학교에서는 우리말과 역사교육을 했는데 그것이 일본인들에게 덜미로 잡혀 폐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

이후 현재의 자리로 건물을 옮기며 비봉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 “ 처음에는 소농리가 아닌 백도리에 학교를 지으려고 땅을 다듬었다고 해요 .

그러다 조부께서 손주들이 재 넘어 먼 길을 지나 등교하는 것이 마음에 쓰인다고 하시며 현재 터에 학교를 짓도록 땅을 기부하신 거예요 .” 그렇게 학교가 지어진 덕에 이후로 마을은 온통 아이들 소리로 북적였다 . 아이들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공터에서 모여 사방치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어르신은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순간은 해 질 녘 마을의 모습이에요 . 온통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고 굴뚝마다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면 , 먹음직스러운 밥 짓는 냄새가 골목마다 풍겼어요 .

제가 고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할 기억이죠 .”

현장 사진

배병우 어르신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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