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스개꽃 피는 서계마을 ] 어르신들은 근무 중 두 강물이 만난 자리 하얀 부스개 꽃 피어 2012 년 전통과자 마을사업 시작 명절특수에 마을주민들 신바람 서계마을을 찾은 첫날 , 유독 날이 흐렸다 . 뉴스에서는 미세먼지가 기승이라고 연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
찌푸린 날씨처럼 걱정이 가득했는데 운 좋게도 인상 좋은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 유완근 노인회장님과 김종수 어르신 . 두 분은 마을 초입 첫 번째 집 마당에 계셨는데 유 회장님 댁이었다 .
우리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르신들은 “ 사진 찍은 값은 줘야지 않겠냐 ” 며 농담을 던지시고 껄껄 웃으시더니 서계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 ■ 강이 육지가 된 서계마을 서계마을은 옆 마을인 신기마을에서 파생됐다 .
2010 년부터 독자적인 마을 이름과 형태를 갖추고 서계마을로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 . “ 여기가 원래 이 앞으로 냇가였어 . 여름이 되면 마을 아 ( 이 ) 들이 냇가서 게도 잡고 했는데 깊이가 꽤나 되어서 잘못하다가 빠지는 사람도 많았지 .
학교 댕기는 아 ( 이 ) 들은 비가 많이 오면 자동으로 학교를 빠졌어 . 마을로 물이 범람하는 일도 잦았지 .” 서계는 ‘ 서쪽에 있는 냇가 ’ 라는 의미 .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의 이 지역은 강이었다 . 구만에서부터 제방을 건설해 땅이 생겼고 지금의 마을이 형성됐다 .
마을 저편에 보이는 산 아래 큰 바위 두 개가 있는데 거기까지 강이었다고 한다 . 당시에 마을과 군산을 오갔던 배 ‘ 서계호 ’ 가 있었는데 현재는 서계마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조형물로 남게 되었다 .
또한 이 곳은 소양천과 고산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 두물머리 마을 ’ 이라고도 하고 삼각지라고도 한다 . 어르신들은 “ 지금은 이쪽이 완주군 최대 쌀 생산지다 . 예전에는 자갈과 모래를 팔아 돈을 벌었다 ” 고 말했다 . 서계마을은 겨울이 되면 되레 마을회관이 한산해진다.
부스개 공장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 겨울을 보내는 경로당에선 무슨 일이 천천히 마을입구에서부터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보면 부스개 공장 바로 앞에 위치한 마을회관이 보인다 .
회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허리가 안 좋으신 할머님들의 필수품인 보행기가 회관 앞에 세워져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부스개 공장에서 일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같이 끼니를 때우고 나란히 누워 단잠을 청하는 하루를 보낸다 .
회관을 찾은 이날은 다른 날보다 조용했다 . 알고 보니 텔레비전이 고장 나 있었다 . 일행 중 누군가 텔레비전을 고치자 회관 지킴이 한점순 (87) 할머니는 손뼉을 치시며 좋아하셨다 . “ 아이고 , 고맙습니다 . 젊은 새댁보고 고쳐달라고 하니까 못 허고 그냥 갔어 .
그래서 이장이 남자 방 하나 , 여자 방 하나에 티비 새로 사준다고 혔는디 신통방통허게 고쳐버렸네 .” 10 년 전 어느 부잣집에서 기증했다는 마을회관의 텔레비전 . 이제는 어르신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어버렸다 .
서계마을 주민들이 전통유과 등을 만들기 위해 손수 기른 엿기름과 부스개 재료를 말리고 있다. ■ 명절엔 정신없이 바쁜 부스개마을 “ 일 년 중 지금이 젤로 바빠 . 곧 설이잖아 ?
우리는 설하고 추석 때 정신없어 .” 설을 몇 주 앞둔 1 월 19 일 주말 오전 서계마을 부스개 공장 ‘ 드림하우스 ’ 에서는 어르신 여덟 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생복을 단단히 차려입고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 어떤 어르신은 부스개에 조청을 발랐고 다른 분은 튀밥가루를 묻혔다 .
이날 어르신들이 만든 부스개는 300 개가 넘었는데 이는 쌀 30kg 에 달하는 양이다 . 부스개 하나는 각기 모양이 다르지만 일반 여성 손바닥보다 조금 크다 . 크기가 큼지막하고 잘 부서지다 보니 살살 다뤄야 한다 . 조청을 바르는 작업도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 “ 적당히 골고루 발라야해 .
너무 많이 바르면 건조 후에 부스개가 붉게 나와 버리고 너무 조금 바르면 튀밥 가루가 묻질 않아 .” 부녀회장 안영숙씨는 “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 이라고 했다 . 마을 자체적으로 공동체 사업이 활성화 되다보니 할 일 없던 어르신들에게 일자리가 생기면서 마을에 소득이 생겨났다 .
최순옥 (80) 어르신은 “ 부스개 만든 지 7~8 년 됐나보다 . 앉아서 일 하다보면 허리는 좀 아픈데 그래도 괜찮다 . 사람들이랑 같이 하니까 재미있다 ” 고 말했다 . 이달막 (77) 어르신은 “ 공장 초기에는 작은 방에서 했는데 이렇게 커져버렸다 . 부스개 만들기 시작하고 용돈을 번다 .
돈 벌면 손주들 주고 나 쓰기도 하고 고기도 사먹는다 ” 고 말했다 . 마을 어르신들의 자부심은 크다 . 부스개를 포함해 마을에서 만든 먹거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 스스로 믿고 먹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한테도 권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
지금은 일을 쉬고 있지만 박기춘 어르신 (83) 도 부스개 공장에서 3 년 동안 함께했다 . 허리가 안 좋아서 그만뒀는데 요즘 같이 공장이 바쁠 때면 그 때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
예전에는 손으로 직접 하는 작업이 더 많았는데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기계로 하는 작업이 생겼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할머니는 “ 옛날에는 절구통에 다 찧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기계로 하니까 편하다 . 튀밥도 예전에는 다 손으로 튀겼는데 지금은 기계로 한다 .
이 부스개 공장도 처음에는 바깥에 엿기름을 널어 놨었는데 지금은 따로 공간이 생겼다 . 그 사이에 또 세상이 발전했다 ” 고 말했다 . 세상은 변해간다 . 그것도 순식간에 . 보다 편해지고 , 보다 빨라졌다 . 하지만 옛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 기춘 할머니가 그렇듯이 .
“ 난 우리 친정엄마한테 부스개를 배웠어 .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부스개를 만들어줬거든 . 요즘은 만들기는 편해졌지만 그래도 집에서 해먹는 게 더 맛있었던 것 같어 . 엄마 손맛이 있었잖아 .” ■ 서계마을 공동체사업은 2012 년 서계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
2012 년 멋있는마을 사업을 통해 희망수레 정원만들기를 했고 2012~13 년 참살기좋은마을을 통해 전통한과 , 가양주를 만들고 저온저장고 시설을 갖췄다 . 2013~15 년 마을기업 사업을 통해 강정을 개발하고 체험을 운영하는 한편 가공설비를 확충하고 기계장비를 갖췄다 .
2018 년에는 생생마을 사업을 통해 HACCP 시설을 보완했다 . 마을주민 대다수가 70 세 이상인 고령마을이지만 공동체상품인 부스개 , 강정 , 유과 등의 생산을 통해 적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마을기업의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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