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 2016.04.05

봄의 마을 산정마을

짐승도 구름도 쉬어가는 깔막 마을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6.04.05 11:18 조회 4,154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봄바람 휘날리면 ~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에 꽃이 피네 구름도 쉬어가는 산정마을 완주 상관 면소재지에서 임실 관촌으로 향하는 슬치고개 아래 , 전주남원국도를 벗어나면 꽤 넓은 터와 가파른 경사를 가진 마을이 나타난다 . 임실로 넘어가기 전에 만나는 완주군의 마지막 마을 산정마을이다 .

이곳에는 65 세 이상의 할머니 · 할아버지 30 여 가구가 산다 . 주로 고추 농사나 콩 , 팥을 심는 이곳은 전주 이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 마을 뒤 임도로 향하면 만날 수 있는 비탈진 밭. 이인구 할아버지 내외가 퇴비를 내리고 계신다. 깔막 ( 언덕 ) 에 있는 마을 마을은 지대가 높다 .

IMG 2049
IMG 2049

전주보다 목련이 7~10 일 가량 늦게 핀다 . 마을 초입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꽤 높다 .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오르내리기엔 벅찰 정도다 . 그래서인지 마을 어르신들은 노인 보행기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 만나는 모든 어르신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다 .

“ 겨울에 눈 오면 그날그날 바로 쓸어야해 . 얼어버리면 노인들은 집밖으로 나가들 못하거든 . 근데 마을이 언덕에 있지만 옴팍하고 동네 자체가 정남향이라 따뜻혀 . 눈도 오면 바로 녹고 .”( 이덕구 ·72) 마을의 막내 이범구씨가 경운기를 타고 언덕을 오르고 있다.

언덕을 오르는 경운기가 뒷걸음질 치다 다시 천천히 오르기 시작한다 . 이평구 (76) 할아버지는 그렇게 마을 뒤에 있는 밭으로 향했다 . “ 누가 우리 마을에 오면 ‘ 여긴 대체 뭐 먹고 사냐 ’ 고 물어봐 . 앞에서 볼 땐 밭이 없거든 .

근데 저 뒤로 가면 밭이 겁나 ( 많아 ).”( 이인구 · 72 ) 집들을 지나 마을 꼭대기에 다다른다 . 그리고 뒷길 임도 로 향한다 . 어르신의 말씀대로 숨어 있던 밭들이 나타났다 . 밭 위에 놓인 비료 포대가 봄볕 아래 나른하게 누워있다 . “ 옛날에 논 200 마지기가 우리 마을에 있었어 .

논농사도 많이 지었지 . 근데 전부 광양선 이 나면서 사라졌어 .”( 이용옥 ·81) 마을 뒤 밭으로 향하는 길 , 그 아래 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훤히 보인다 . 반대편에서는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경운기가 힘을 쓰고 있다 .

밭으로 후진하는 경운기가 천천히 , 그리고 조심스레 덜컥거리는 소리를 낸다 . “ 농사가 깔막 밭이라 평지보다는 힘들어도 그래도 괜찮어 . 다른 밭은 여기보다 더 비탈도 하는데 뭘 .”( 송준순 ) 봄나물 올라오는 밥상 4 월이 되기 전 , 마을 경로회관은 2 명씩 짝을 지어 점심 당번을 한다 .

이날 점심 당번인 박영자 할머니는 집 앞 마당에서 돌나물을 캐고 계셨다 . “ 여긴 마당에 있는 게 다 반찬이야 . 요새 같으면 돈 ( 돌 ) 나물을 캐기도 하고 상추 뜯어다 먹기도 하고 . 봄이 오니 먹을 게 지천에 있어 .

여긴 자급자족이 돼 .”( 박영자 ·72) 박영자 할머니가 집앞 마당에서 돌나물을 캐고 계신다. 오늘 점심 식단은 돌나물과 고등어조림 , 갓 담은 깍두기 , 밭에서 가져온 상추와 집 된장 . 그리고 누군가의 생일이라며 사온 튀긴 굴비도 있다 . 입안에 들어온 나물 향에 문득 봄을 느낀다 .

“ 매일 밥 짓는데 쌀 3kg 씩은 들어가나벼 . 우리는 11 시 반이나 되면 여기 다 모여서 밥 먹거든 . 같이 먹으면 좋지 .”( 이예분 ·73) 어미를 재촉하는 봄 마을 초입의 경사진 밭 , 김영권 (80) 할머니는 마른 땅에 앉아 호미질을 하신다 .

다 구겨지고 뒤축이 무너진 운동화를 신고 할머니는 봄을 맞을 준비를 하신다 . “ 풀떼기 씨가 떨어지면 이렇게 땅에 퍼져 . 그럼 밭에 나와 호맹이 ( 호미 ) 질 해야혀 . 농사 조금이라도 해야 우리 애들들 주지 .”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 , 할머니는 봄을 맞이하는 땅을 일군다 .

끝이 벼린 바람 , 두터운 덧신은 그가 마지막 추위를 내치는 유일한 무기다 . 열아홉에 이 낯선 동네로 이사와 , 여든 둘이 될 때까지 그는 수십 번의 봄을 맞이했다 . 그리고 할머니는 지금도 새 봄을 기다리고 있다 . 김영권 할머니가 풀을 매다 잠시 쉬고 계신다. 바지런한 어미의 봄이 왔다.

6 남매를 제대로 갈치지 ( 가르치질 ) 못한 못난 어미라 , 그래도 훌륭하게 커준 자식들이 용돈이라도 준다 하면 너무 미안시러워 ( 미안해서 ) 콩이라도 심고 팥이라도 심어 팔아야 한다 . 어미에게 봄이란 , 무릇 그런 것이다 . 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해지는 계절이다 .

현장 사진

짐승도 구름도 쉬어가는 깔막 마을 사진 1

첨부자료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