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칼국수도 시래기국도 같이 나누니 진수성찬 관광지로 유명한 이곳은 누군가에겐 한평생 보내왔을 고요한 , 혹은 치열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 뒤로는 모악산을 , 앞으로는 구이저수지와 경각산 자락이 펼쳐지는 상학마을에는 140 세대 , 230 명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
매일 함께 먹는 점심 , 오늘은 ‘ 칼국수 먹는 날 ’ 낮 열두시가 넘은 시각 . 상학마을 내 식당가에 하나 둘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몰려온다 . 같은 시각 마을회관에서도 주민들이 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송영자 (70), 이행자 (74) 씨가 주로 점심식사를 책임진다 .
이날 시래기된장국에 도토리묵 , 깻잎장아찌 , 배추김치 , 파김치 , 총각김치가 밥상에 푸짐하게 올려졌다 . 소박하지만 뱃속을 든든히 채워줄 반찬들이다 .
행자 씨는 “ 다른 부락은 순번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한다지만 우리는 몇 사람씩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것 ” 이라며 “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즐기며 하고 있다 . 동네 어른들하고 이렇게 한 자리에서 먹어야 더 맛있고 맛있게 드셔주시면 뿌듯한 마음이다 ” 라고 말했다 .
이날 오후 식사는 부녀회장 왕유화 (66) 씨의 반죽으로 만든 팥칼국수이다 . 오후 5 시가 넘어가자 모두들 반죽을 치대고 미느라 분주하다 . 올해 아흔 한 살인 백공수 할머니도 쉬지 않고 반죽을 치댄다 .
‘ 마을회관 지킴이 ’ 처럼 항상 회관을 지키고 있는 백 할머니는 식사를 하기 전부터 먼저 회관에 나와 계신다 . “ 나는 여기서 딸 넷에 아들 셋 칠남매 키우고 살았어 . 농사지어서 중학교까지는 갈쳐놨어 .
지금은 막둥이 아들만 나랑 같이 살고 나머지는 다 떨어져서 살아 .” 부녀회장 유화씨는 이날을 위해 혼자 세 시간 동안 숙성시킨 25 인분 반죽을 내왔다 . 보기만 해도 꽤 많은 양이다 . “ 혹시 몰라서 넉넉하게 해온 거예요 . 안 질고 딱 좋네요 .
제가 바쁠 땐 잘 못 챙기는데 오늘은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칼국수라도 먹으려고요 . 이렇게 다 같이 먹어야 꿀맛이거든요 ( 웃음 ).” 모악산 아래 자리한 삶의 터전 상학마을은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 양쪽에 자리해있다 . 계곡을 기준으로 윗마을을 상학마을 , 아랫마을을 하학마을이라고 부른다 .
과거에는 ‘ 웃 학내 ’, ‘ 아래 학내 ’ 로 부르기도 했다 . 송 영식 (73) 어르신은 “ 어른들 말씀으로는 예전에 이 터에 학이 많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 그래서 ‘ 학마을 ’ 이라고 불렀다 . 지금은 찾아볼 수는 없다 ” 고 말했다 .
송 어르신은 16 년간 이장을 맡고 , 재작년부터는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 오랫동안 마을의 변천사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온 산증인인 셈이다 . “ 모악산 우회도로가 생기고 도립 미술관이 지어지면서부터 서서히 발달하기 시작했지 . 아마 2000 년이었을 거야 .
이후로 등산객도 꾸준히 늘었고 , 이사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지 . 지금 주민 중 절반은 귀촌 인구야 .” 그 무렵 관광단지도 조성되며 마을 내 대부분 논과 밭이 사라졌다 . 현재 마을은 농사 짓는 규모가 작고 , 일부는 외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한다 .
마을에서 지금까지 20 년간 이장 일을 맡아오고 있는 이용철 (69) 이장도 마을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 “ 우리 마을은 모악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장사했던 분들이 많았죠 . 제 위에 형님도 여기서 장사를 했었고 지금도 하고 계셔요 .
모악산 우회도로랑 관광단지가 생기기 전에는 다 상학마을을 지나서 갔었는데 이제는 관광객 숫자가 많이 줄었죠 . 본래는 모악산 가는 길은 동네 안으로 지나쳐야 했는데 20 년 전쯤 해서 도로를 앞으로 내가지고 그게 영향을 끼쳤죠 .
옛날엔 큰 목욕탕도 있었고 식당이며 펜션이며 더 많았어요 .” 문 안잠가도 맘 편한 마음 저 멀리 빨간 사륜 전동차를 타고 최월임 (83) 할머니가 지나가신다 . 월임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 완주로컬푸드에 납품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신다 . 젊었을 땐 모악산에 올라가서 노점 장사를 하셨단다 .
주말이면 모악산에 사람이 많아 10 만원어치는 팔곤 했던 기억이 난다 . “ 치커리 , 상추 , 호박잎 , 호박 같은 거 팔았어 . 깨끗하게 해가지고 모양도 예쁘고 많이씩 주니까 내가 1 등으로 팔고 내려왔지 ( 웃음 ). 전엔 우리 마을 쪽에 도 식당이 겁났어 ( 많았어 ).
옛날엔 열세네 곳 정도는 됐는데 시방은 서너집 밖에 안 해 . 지금은 버스 노선 따라서 저리 위로 올라가버렸으니까 . 객지에서 놀러온 사람들도 다 거기에서 밥먹고 놀더라고 .” 월임 할머니에게 마을에 대해 묻자 표정에서부터 애정이 넘친다 .
그에게 있어 이 마을은 ‘ 문 안 잠가놔도 훔쳐가는 것 하나 없는 마을 ’ 이다 . “ 상학 ( 마을 ) 은 인심 좋고 공기 맑고 좋지 . 문 안 잠가놔도 훔쳐가는 것도 없어 . 또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 맨날 밥 해주느라고 고생해 .
완주군에서 쌀 20kg 씩 한 달마다 꼬박꼬박 주는데 그걸로 같이 밥 먹는 거야 . 전기요금이랑 다 지원해주니까 회관에 나와서 노는 거지 .” 로컬푸드에 내놓을 쪽파가 마를까 허리 숙여 씻고 있는 박만의 (86) 할머니도 옆에서 말을 보태신다 . “ 옛날에 우리 젊어서는 삼베 짜고 길쌈매고 그랬어 .
아직까지도 동네 양반들하고 잘 지내 . 밥도 같이 먹고 사람들이 참 좋아 . 이런 사람들이 없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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