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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0.05.12

돌담이 예쁜 시평마을

노인회장 윤옥림 할머니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0.05.12 14:30 조회 3,5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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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꾸민 마당 정원에 봄이 한 가득 어린 손님 손잡고 마당 안 꽃구경 “ 지난해 심은 접시꽃이 이만치 컸네 ” 오가는 사람 하나 없던 조용한 오전 , 노인회장 윤옥림 (81)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 대문이 없는 할머니의 집 . 그가 손수 꾸민 작은 정원에는 봄을 맞은 화사한 꽃이 가득하다 .

“ 이리 들어와서 앉아 . 이것 좀 먹을텨 ? 우리 아들이 사과농사를 짓는데 사과즙도 혀 .” 두 손 가득 사과즙을 챙겨주신다 . 엊그제 미장원에서 한 파마머리를 빗으며 소녀처럼 환히 웃는 모습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

6p 메인사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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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스물한 살이 되었을 무렵 , 당시 양 집안과 잘 아는 사이인 ‘ 약방 아저씨 ’ 의 중매를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 고향인 전주에서 차를 타고 이 산골로 시집을 왔던 날이 어느덧 까마득하다 .

“ 우리 아저씨가 5 대 독자였는데 약방 아저씨가 내가 아들을 잘 낳을 거라고 생각했었나봐 . 우리 친정 식구들이 아이를 많이 낳았었거든 . 그래서 중매를 서 준거야 .” 약방 아저씨의 추측이 맞았는지 할머니는 아들 넷에 딸 둘을 낳았다 .

“ 처음에 시집와서 나는 일을 할 줄 모르니께 그냥 청소하고 밥만 짓고 그랬어 . 일을 못해서 저녁만 되면 매일 울었어 . 누가 구박하는 것도 아닌데 서러워서 그랬지 . 새댁이 매일 우니까 마을에서 울보라고 소문났었어 .” 꽃을 좋아하는 노인회장 윤옥림 할머니가 돌담 밑 금낭화를 살펴보고 있다.

할머니는 그럼에도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 아이를 낳으면 꼭 시아버지가 미역을 사오고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 미역도 귀한 시절이었지만 며느리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 그런 시부모님의 모습에 할머니는 참 감사했다 . “ 우리 시어머니가 천사같았어 .

사람이 지나가면 와서 눌은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그랬으니께 . 남이 내 흉을 보더라도 우리 시부모님들은 절대 내 흉 안 봤어 .” 시간을 되돌려서 젊어진다면 시어머니처럼 남들에게 베풀며 살고 싶다고 말하던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 고생했던 날들이 많았어도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

“ 늘 좋게 대해주셨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쯤 나한테 정을 떼려고 하셨던 건지 우리 아저씨한테 ‘ 야가 내 약을 안 챙겨줬다 ’ 고 하시더라고 . 그러니까 우리 아저씨가 나를 막 혼낸 적이 있어 . 그래서 친정 오빠네 집으로 얼른 도망갔지 .

친정 오빠랑 서로 힘든 얘기 나누고 부둥켜안고 울었지 .” 모두가 함께 어려웠던 시절 , 마을에서 고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 . 마을의 아낙들도 그러했다 . 추운 겨울에 얼어있는 도랑을 깨고 빨래를 하면 새빨개진 손이 갈라지고 터서 피가 마르지 않았다 .

“ 얼음물에 빨래하면 손이 얼마나 가려운지 몰라 . 메밀재로 빨래를 하면 재라서 새까만데 때가 잘 지워져 . 메밀재가 아니면 깨를 털고 남은 깨 대를 썼지 . 그전에는 나일론이 있었간디 . 그거 나오면서 편해졌지 .” 할머니는 어려운 시절 이야기라도 웃음이 난다 .

옛날이야기를 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마당 구경을 시켜준다며 손을 잡아 이끈다 . 꽃들을 직접 심은 할머니의 부지런한 마음을 알아준 탓일까 . 지난 가을에 심었던 접시꽃은 벌써 높이 자랐다 . 꿀벌들이 분주하게 할머니의 정원에서 날아다니며 꿀을 모은다 .

그러고 보니 조그마한 할머니의 뒷모습이 꾀를 부리지 않는 한 마리 꿀벌 같다 . “ 나는 꽃이라면 다 좋아 . 계절도 따뜻하고 꽃피는 봄이 제일 좋고 .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꽃놀이도 못 갔지만 그래도 이 계절이 제일 좋더라구 .”

현장 사진

노인회장 윤옥림 할머니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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