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병풍 두르고 앉아 무생채에 막걸리 한 잔 소양면 해월리 전북체육고등학교를 지나 안으로 쭉 들어가면 다리목마을이 나온다 . 기다란 형태의 마을 뒤편에는 위봉산과 원등산이 병풍처럼 서있다 . 산 아래 오목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56 세대가 산다 .
다리목마을을 찾은 날은 햇빛이 강했고 바람은 제법 찼다 .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 ■ 옛날부터 한지장판 유명 마을사랑방인 이창근 (63) 씨 집 마당에서는 조촐한 막걸리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 안주는 배추김치와 무생채 .
별것 없는 날씨 이야기와 그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낯선 손님이 오자 어르신들이 하나둘 마을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 어르신들에 의하면 다리목마을은 한지장판을 비롯해 예부터 한지로 유명했다 . 마을 꼭대기에는 한지공장이 있었고 , 당시의 많은 청년들이 이 공장에서 일했다 .
박남춘 (80) 어르신도 열여섯 되던 해부터 한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 남춘 어르신은 “ 콩기름을 종이에 먹이면 기름이 스며들어서 종이가 질겨진다 . 이걸 말려서 장판으로 썼다 . 나일론 장판이랑은 완전 다르다 .
한지장판은 부드럽고 습기도 안 차고 벌레도 잘 안 생겨서 그 당시 잘 사는 양반들이 깔고 살았다 . 대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갈대를 엮거나 나무를 쪼개서 깔고 살았다 ” 고 말했다 . 박명선 할머니의 아버지도 마을에서 한지공장을 크게 했었다 .
얼마나 장사가 잘 되었는지 한지공장 안에 방을 만들어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살았던 기억이 난다 . “ 아버지가 마을서 한지 장판지 공장을 크게 했어 . 우리 마을이 한지로 유명해서 이북까지 가서 팔고 그랬지 .
공장 안에 집도 지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기 살았는데 밥 때가 되면 솥에다가 밥을 많이씩 해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 그 사람 애기들도 같이 먹고 그렇게 살았네 .” 다리목마을 주민들은 이웃간의 정이 깊다.
언제든지 막걸리 잔을 함께 기울이고 만나면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운다 ■ 마을주민 대다수 천주교 신자 다리목마을은 천주교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 마을에 천주교인이 공부를 하는 피정 ( 避靜 ) 의 집이 있고 옛 공소 터도 남아있다 . 소양성당이 생기기 전까지 마을 주민들이 미사를 드리던 곳이다 .
임실치즈를 탄생시킨 고 지정환 신부가 살던 집터도 그대로 있다 . 지금도 마을주민 대다수는 천주교를 믿는다 . 옛 공소 터에 살고 있는 김인석 (81) 어르신도 천주교 신자이다 . 부모님도 천주교 신자였고 자신도 ,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도 모두 천주교를 믿는다 .
인석 어르신은 “ 우리 마을은 천주교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 우리 집 거실과 방이 예전에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미사를 드리던 장소였다 ” 고 말했다 . 오후 2 시 , 햇볕이 뜨겁다 . 마을을 걷다가 그늘을 찾던 중 ‘ 다리경로당 ’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두 어르신이 보였다 .
유금순 (84), 박명선 (81) 할머니다 . 둘은 함께 소양성당에 다녀오는 길이다 . 금순 할머니는 “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성당에 가는데 수요미사 , 금요미사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 오늘 읍내 나간 김에 침도 맞고 왔다 ” 고 말했다 .
날이 덥다보니 외출할 때 챙겨야 하는 마스크도 원망스럽다 . 할머니는 “ 요새는 버스 타려면 마스크 꼭 써야 한다 . 땀도 차고 숨도 차서 번잡스럽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니 쓴다 ” 고 말했다 .
한때 한지로 유명했던 다리목마을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았다 ■ 환경이 좋아 이주가구 계속 늘어 최근에는 마을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 산에 둘러 싸여 있어 공기가 좋고 조용해서이다 . 주민들은 원주민 , 이주민 할 것 없이 오가며 인사를 나눈다 .
분기별로 마을 주민들이 모임을 갖고 마을위원회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 손기화 (65) 씨도 이 마을로 이사 온 지 5 년 됐다 . 그는 집 담벼락 옆 화단을 정리 중이었다 . 평소에는 일을 해서 바쁘지만 이번 주는 코로나 19 때문에 일을 쉰다고 했다 .
그는 “ 시간이 좀 생겨서 화단 정리를 하고 있다 . 원래는 국화가 예쁘게 피는데 근래 비가 많이 와서 다 망가졌다 ” 며 “ 올해는 이웃들에게 국화를 나눠주지 못하겠다 ” 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 그의 집 앞에는 작은 내가 흐른다 .
평소에는 물이 말라있는데 지난주 비가 와서인지 이날은 물이 제법이다 . 한 어르신은 마을 안쪽에 ‘ 상바탕 ’ 이라고 불렸던 곳이 있다고 했다 . 산에서 물이 나오던 곳을 말하는데 그 물이 좋아 나병환자들이 마을을 찾아오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인석 할아버지는 “ 나병환자 셋이 그 물을 마시고 나아서 갔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은 적 있다 . 옛날에는 산에 물 양이 많아서 목욕도 자주 했었다 . 물이 참 찼던 기억이 난다 ” 고 말했다 . 마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5 세 가량 .
고령자들이 많아 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젊은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는 경우가 많다 . 그 중에 젊은 층에 속하는 박태평 (58) 씨는 마을에서 양봉을 한다 . 피정의집 방향으로 쭉 올라가다보면 인적이 드문 밭 인근에서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 그곳에 태평 씨가 있었다 .
마을에 정착한지 3 년 정도 된 그는 혼자 양봉을 한다 . 양봉의 규모는 60 군 가량 . 많은 편은 아니지만 혼자 하다 보니 벅찰 때도 있다 . 게다가 지금은 가장 바쁠 시기이다 . 그는 “5~6 월에 꿀을 따는데 오히려 그때는 꿀만 따면 되기 때문에 한가하다 .
하지만 8~9 월은 말벌을 쫓아야 하는 시기라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 고 말했다 . 오후 2 시 , 뜨거운 햇빛 아래 김이 나는 훈연기로 벌통을 소독하는 그에게 서두르는 모습은 없다 . 그저 오늘의 할 일을 해나가는 것뿐이다 .
다리목마을 산 중턱에 새로 문을 연 카페해월, 마을로 귀농한 자매가 치유농장과 함께 운영한다 □ 다리목 마을은 마을명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한자로 풀이하면 많을다 多 배나무리 梨 나무목 木 이다 . 배나무가 많았으며 당도가 높아 임금님께 진상을 할 만큼 좋았다고 전해진다 .
천주교 신자가 마을주민의 80% 에 달하며 같은 종교를 믿는 만큼 단합이 잘된다 . 임대훈 이장은 “ 마을발전은 더디지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마을 ” 이라고 설명한다 . 올해 코로나 19 로 인해 무말랭이 출하 등 계획하고 있던 마을사업이 미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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