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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1.05.11

눈기러기로 평지마을

박전근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1.05.11 15:55 조회 3,15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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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베풀고 살아야 해 지난 오전 11 시 무렵 , 선선한 바람에 옷을 얇게 걸쳐도 기분 좋은 날씨였다 . ‘ 국가유공자의 집 ’ 팻말이 걸려 있는 집을 찾았다 . 집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지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 소리를 따라가 보니 비닐하우스에 닿았다 .

박전근 (76) 어르신은 일찍이 나와 밭에서 상추를 따고 계셨는데 벌써 종이상자에는 상추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 ■ 뿌리에서 배운 삶의 태도 사람 좋은 웃음을 띤 박전근 어르신은 집에 찾아 온 객들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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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 년의 세월을 먼저 살아 본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들이었다 . “ 항상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누군들 베푸는 것이 중요해요 . 나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를 돌이켜 봐야 하고요 .” 전근 어르신 책장에는 수많은 표창장, 위촉패가 놓여 있다.

어르신은 그동안 마을 이장부터 의료보험조합 운영위원 , 비봉농협 조합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 주변에서 고마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들었지만 싫은 소리도 함께 들어야 했다 . 그럼에도 어르신이 주변 사람들을 중요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

“ 우리 16 대 할아버지가 청백리로 꼽히는 고위직이었어요 .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데 항상 겸손하게 사는 걸 강조하셨대요 . 저도 이 뿌리에 맞게 살려고 노력한 거예요 . 우리 형님은 정미소를 했었는데 어려운 이웃에게는 삯을 안 받았고 밤중에 집 앞에다 쌀을 나눠줬대요 .

형님 살아있을 때 저한테 ‘ 주는 걸로 만족하고 받을 생각은 하면 안 된다 ’ 고 일러줬어요 .” 그는 젊은 시절에 서울 생활을 11 년 하고서 1982 년도에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 어렵게 터전을 일구면서 정착했고 92 년도부터 6 년간 마을 이장을 했다 .

그때 지어놓은 마을회관은 현재까지도 주민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 “ 다른 마을에서는 회관 지을 때 군에서 지원받고 짓기도 하더라고요 . 근데 우리 마을은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2500 만 원 정도 모았는데 그 돈으로 공사해서 1994 년쯤 완공했어요 .

마을 주민들한테서 감사패를 받았는데 이게 다른 표창장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 ■ 늘 옆자리에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전근 어르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10 년간 연애해서 1970 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 같은 비봉 사람이었던 아내는 성품 좋기로 유명했다 .

아내는 언제부턴가 건강이 안 좋아졌고 14 년간 병상에 있다가 지난 2019 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 “ 우리 아내가 엄청난 미인에다가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남들한테 참 잘 했어요 . 주변에서 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칭찬했죠 .

근데 몸이 안 좋아서 머리 수술 세 번 , 가슴 수술 여섯 번을 겪었어요 . 5 년 동안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요 . 매일 아침 , 저녁으로 병원에 갔는데 좀 힘들었어도 주변에는 그렇게 말 안 했어요 .” 늘 아내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간병했던 전근 어르신 .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 이웃부터 가족 , 친구들까지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 “ 아내가 아플 때 거의 열댓 집에서 김장김치를 갖다 줬어요 . 어떤 분은 8 년 동안 한 달에 2~3 번씩 반찬을 해줬고요 .

사고로 차가 고장 났을 때 동생이 차도 사주고 , 며느리가 생활비도 보탰고 , 제수씨가 꾸준히 음식도 챙겨 줬어요 .” 그렇게 한참을 고마운 사람들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오늘 오전 내내 밭에서 딴 상추들은 어르신의 마음을 대신해서 선물할 참이다 .

“ 이렇게 농사지어서 누구한테 파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한테 주는 거예요 . 그동안 옆에서 챙겨준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요 . 그나저나 오늘 우리 집까지 와 줘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상추 좀 가져가요 .”

현장 사진

박전근 어르신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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