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 이어온 농업시스템 후대에 물려주는 게 우리 역할 ” 완주봉동생강 전통농업시스템 보존위원회 이용국 위원장 지난 2019 년 12 월 완주 생강 전통농업시스템이 제 13 호 ‘ 국가중요농업유산 ’ 에 등재되었다 .
청산도 구들장 논과 제주 밭담 , 하동 전통차 농업 등의 뒤를 이어 전통성을 가진 농업 유산으로서 보전하고 전승할만한 가치를 인정을 받은 것이다 . 이러한 결실을 맺기까지는 2018 년경 구성된 ‘ 봉동생강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추진위원회 ’ 의 역할이 컸다 .
이용국 (67) 위원장은 “ 한국 자생 생강 최초 시배지인 봉동 지역이 점차 방치 또는 매몰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을 보며 , 생강 재배 농법과 오랫동안 자연 보관 가능한 온돌식 토굴 저장법을 보존하기 위해 농업유산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 고 말했다 .
이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의견을 교류하고 , 생강굴 전수조사와 주민 의견 수렴 등 최종 선정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 등재 이후에는 ( 사 ) 완주생강전통농업시스템보존위원회를 결성했다 . 여기에는 재배 농가뿐만 아니라 생강 농법에 관심 있는 사람 등 총 20 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 .
비영리단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 현재 회원 중 15 명이 토종생강 재배면적 확대와 홍보 차원에서 공동경작단을 꾸렸다 . 이 위원장은 “ 단원들은 생강 재배를 위해 일부 보조금을 받기도 한다 .
이를 사용해 각자 자신의 농지에서 991 ㎡ 이상을 생강 농사로 짓도록 하고 있고 , 연말에는 성과보고회도 계획되어 있다 ” 고 설명했다 . 밭에서 온 생강자루를 줄에 매달아 굴 안으로 내려보내는 모습. 생강의 역사는 자그마치 1,000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문헌 자료에서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 1018 년 고려 현종 때 전사한 장수의 가족들에게 생강을 하사한 기록이 있으며 , 난중일기에도 이순신 장군이 삼례역참 판관에게 봉동 생강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
위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생강이 하사품으로 나눠 줄 만큼 생산량이 확보되었다는 점 , 우리나라가 생강 농업이 정착기에 접어들었다는 점 등을 유추할 수 있다 .
또한 1600 년 동의보감에 ‘ 생강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전주에서 생산 ’, 1871 년 임하필기에는 ‘ 전주의 생강으로 정과를 만드는데 그 맛이 천하일미 ’ 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봉동이 생강의 주요 생산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기록된 시기의 봉동읍은 전주부에 속해 있어 모두 ‘ 전주 생강 ’ 이라고 칭함 ) 위) 지하토굴로 내려가는 입구, 아래)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생강 자루 수확한 생강은 추위에 썩지 않도록 15~18°C 의 따뜻한 온도로 보관해야 한다 . 이때 사용하는 것이 온돌식 토굴 저장법이다 .
현대에는 기술의 발달로 창고에서 일정한 온도로 쉽게 보관할 수 있지만 , 과거에는 집집마다 구들장 아래 생강 굴을 만들어 온돌의 열을 이용해 따뜻하게 보관했다 . 이 방식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직 봉동에서만 사용했다고 한다 .
이용국 위원장은 “ 다른 지역은 생강 저장기술이 없어서 겨울이면 모두 썩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저장해두고 이듬해 수확하지 않는 철에 판매했다 ” 고 말했다 . 오랜 역사를 이어온 봉동의 토종 생강과 이를 보관하는 생강굴을 보존하기 위해 결성된 이들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 이용국 위원장은 “ 올해는 그래도 생강이 잘 자란 편이지만 갈수록 온난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상승하여 토종생강을 재배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 온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생강이지만 그럼에도 적정 온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
최근 재배한 생강에서는 꽃대가 자라는 등 이전에 볼 수 없던 변화가 생겼다 . 또 전에 없던 병들이 생겨나서 재배법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
안타까운 점은 전문 연구사가 없으니 재배 방법에 대한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최악의 경우 토종생강이 사라질 수도 있다 ” 고 말하며 “ 우리의 역할은 이러한 점을 보완해서 천 년을 이어온 전통농업 시스템을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 이라고 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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