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섭(83) 할아버지에게는 20여 년째 그의 ‘다리’를 대신하는 분신(分身)이 있다. 세월 앞에 굳어가는 다리처럼, 검은 녹이 슬어가는 자전거다. 고향이 어디세요? 나는 고향이 충남 금산이여. 우리 안사람이 먼저 가고 나서, 다 큰 자식들 따라 도시로 가기도 뭐하고.
그래서 무작정 이곳(원완창마을)으로 왔지. 고향 가까이 마을로. 저 자전거는 얼마나 된거에요?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데. 여그로 와서 제일 먼저 친구가 된 사람이 있었어. 가장 친하게 지냈지. 근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자기가 쓰던 자전차를 나한테 주대.
내가 탄 것만 20년이 넘었고, 그 친구가 탄 거까지 합치면 30년은 넘었을 것이어. 자전거로 안 가본 곳이 없으시겠어요. 아, 그럼, 물론이지. 내가 이곳으로 이사 와서는 노동일을 많이 했어. 한 15년 운주에 공사하는 사람따라 일 많이 다녔어. 겨울에 동상도 그래서 걸렸지.
지금도 그 손가락이 안 좋아. 자전차를 타고 먼데까지는 못 가도 그래도 이곳저곳 많이 다녔지. 나 가는 곳 있음 자전차가 날 따라갔어. 말 그대로 분신이지. 분신. 수 십 년이 넘었는데 자전거도 고장이 많이 났겠어요. 벨은 여러 번 갈았어. 헌데 다른 건 한 번도 손을 안 뎄어. 무지하게 튼튼하더라고.
녹은 저래 슬었어도 잘가. 내 다리보다 튼튼해. 자전거를 보면 친구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자전차를 준 친구는 먼저 세상을 떠났어. 저 자전차는 내가 이 마을에 산 것보다 더 오래 됐지. 저것만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나. 정말 고마워. 완주 요양원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지…. 고마운 친구여.
저 자전차에 정 많이 들었어. 나 사는 동안은 계속 탈거구만. 세월 앞에 자전거는 녹이 슬어간다. 하지만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단단해진다. 그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든든한 다리’. 혹독한 추위에도, 살랑이는 바람에도, 그는 오늘도 가볍게 공기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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