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 나고 자란 제자리색시 김종례 어르신 먹을 사람 없어도 이맘때면 감 깎아 매달아 놓아야 보기 예뻐요 “ 처마 밑에 곶감을 달아놓으면 바라보기가 좋잖아 . 곶감은 여기 ( 동상면 ) 씨 없는 곶감이 일등이지 .” 김종례 (74) 할머니의 집 처마 밑에서 곶감이 익어가고 있다 .
이제 막 감을 깎아 매달아둔 참이다 . 종례 할머니가 다자미마을에 정착한건 50 여년 전 . 수십 년간 지루하게 봐온 풍경일텐데도 할머니 눈에는 여전히 예뻐보인다 . 집안에도 곱게 익은 감나무 가지를 가져다 걸어두었다 . “ 아버지 따라 스물셋에 여기 왔어 .
가지고 있는 땅이 좀 있어서 친정식구들이 다 같이 이사 왔거든 . 지금 이 집은 시댁이고 .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연애하다 결혼했는데 왜 했나 몰라 . 남편이 미남이었어 .” 50여년 째 살아오고 있는 김종례 할머니의 집 종례 할머니는 이사 온 해에 마을에 살고 있던 남편을 만나 곧바로 결혼했다 .
같은 해에 친정집과 시댁으로 다자미마을과 두 번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 “ 내가 7 남매를 뒀는데 6 명이 딸이야 . 딸이 연속해서 5 명이 태어나니까 시할머니한테 쫓겨날 뻔 했어 . 불 못 떼서 혼나고 , 보리밥 못 먹는다고 혼나고 .
그냥 맨날 혼났어 .” 할머니는 금이야 옥이야 사랑받고 자란 귀한 딸이었다 . 가까이 살던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아 친정어머니가 아이들 옷이며 먹을 것 , 흰쌀 등을 아낌없이 챙겨줬다 . 시할머니의 구박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친정어머니의 도움과 시어머니의 사랑 덕분이었다 .
“ 시어머니가 날 많이 챙겨주고 감싸줬어 . 보리밥 못 먹고 있으면 몰래 쌀밥해서 주시기도 하고 … . 지금은 딸들이 참 잘하지 . 맨날 집에 있음 뭐하냐고 계절마다 여행 데리고 가줘 . 다음 주에도 날 잡는다고 연락이 왔어 .
먹을 것도 보내주고 암튼 잘해 .” 옛날에는 지금처럼 길이 나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병원이라도 가려고 하면 재를 넘고 송광사부터 전주까지 걸어 다녔다 .
아이를 들쳐 업고 새벽같이 출발해도 당일에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힘드니 한 번 나가면 1 박 2 일 일정으로 전주에 있는 고모네 집에 신세를 지고 자고 오거나 했다 . 그렇게 7 남매를 키워냈다 . “ 우리 마을이 많은 자식 낳아 아름답게 키우라고 다자미 ( 多子美 ) 잖아 .
산 속이라 해가 빨리 져서 밤이 엄청 길어 . 그래서 옛날부터 애를 많이 낳았나봐 ( 웃음 ).” 지금은 딸과 둘이 산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엔 곶감도 꽤 많이 만들었다 . 40 그루 정도의 감나무가 있는데 지금은 일손이 없어서 감을 딸 생각도 못하고 묵혀두었다 .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도 아직 따지 못한 감이 많다 . 그 덕에 까치가 배부르다 . “ 산 속이라 공기 좋고 좋잖아 . 마을 사람들도 다 좋고 . 요즘 몸이 아파서 먼데까지는 못 나가고 가끔 학동마을까지 길만 왔다갔다 해 .
모정 옆에 있는 운동기구도 쓰면 좋은데 요리조리 핑계만 대고 잘 안하게 되드라고 .” 최영례 할머니(사진 위쪽). 종례할머니가 동갑내기 친구 영례 할머니네 마실갔다 눌러앉아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다. 종례 할머니는 심심할 때면 앞집 사는 동갑내기 친구 최영례 (74) 할머니에게 마실을 간다 .
영례 할머니는 종례 할머니보다 먼저 다자미마을에 시집을 와서 정착했다 . 젊었을 때는 서로 사는 것이 바빠 왕래가 적었지만 지금은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 영례 할머니 역시 슬하에 7 남매를 뒀다 . 종례 할머니는 오늘도 영례 할머니 네에 놀러왔다가 밭에 눌러앉아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다 .
“ 그 집 사위가 이렇게 아침 일찍 와서 뽑아뒀네 . 그냥 놀러왔다가 바빠 보여서 다듬는 거야 . 슬슬 하다가 가야지 뭐 (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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