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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9.10.14

가을날에 옥포마을

비가 오고 해가 뜨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9.10.14 16:01 조회 3,4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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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날이다 좋은 날 , 일하기 좋은 날 뭍에서 물로 , 다시 뭍으로 저수지와 함께 흘러온 삶이 가을볕에 천천히 익어가 가을비가 내린다 . 부슬부슬 . 화산면 종리마을을 지나 경천저수지를 안고 한참을 들어가니 한 마을이 보인다 . 비가 와서인지 유독 고요하다 .

마을 이름은 구슬옥에 개포 자를 써 옥포 ( 玉浦 ). 예부터 어부가 있는 마을이다 . 지금은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한 두 가구 정도만 가끔 물고기를 잡는다 . ■ 어부가 있는 옥포 ( 玉浦 ) 마을 “ 오늘 비가 제법 오네 . 지금은 일기예보가 있으니까 좋아졌어 .

2면 메인사진
2면 메인사진

그 전엔 라디오서나 가끔 듣지 , 밭일하다 비 맞고 그랬어 .” 여정화 (78) 할머니는 지붕이 있는 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있었다 . 직접 농사지은 마늘이다 . 남편은 얼마 전 돌아가시고 이 집에서 혼자 산다 . 할머니의 남편도 어부였는데 집에는 물고기를 잡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

처음 본 어린 객이 그 사진을 보고 싶다니 선뜻 집안으로 데려간다 . “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보여 달라는데 안 보여줄 수 있나 ” 라며 정이 가득 담긴 말씀을 건네면서 . 사진 속 젊은 남편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나무배를 타고 그물을 치고 있다 . “ 우리 아저씨가 저때 67 세였나 .

그 나이까지 물고기 잡고 그러셨어 . 저땐 먹고 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심심하면 잡은 거지 . 누가 사진을 저렇게 멋있게 찍어줘서 걸어놨어 .” 붉게 익어가는 감나무에서 마당에 널어놓은 대추에서 결명자를 터는 노파의 손길에서 옥포마을의 가을이 느껴진다. 시간이 벌써 점심이다 .

할머니가 냉장고를 벌컥벌컥 여신다 . 배고플건디 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시럽네 하시며 할머니는 내 두 손에 음료수 3 병을 챙겨주신다 . 화산면 운제리 옥포마을은 1953 년 경천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원 옥포가 수몰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주민들은 수몰된 지역을 ‘ 옥포뜰 ’ 이라 부른다 . 현재는 19 세대가 사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 과거 마을에 살던 30 여 가구 중 3 분의 1 정도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는데 그중 한 명이 김두연 (87) 할아버지이다 . "소나무를 베어서 목수들 데려다가 배를 짰었어 .

5 명도 탈 수 있는 배였는데 위험하니까 마을 사람이랑 나랑 둘이서만 탔어 . 저녁에 그물을 쳐놓고 새벽에 거두는 거야 . 그럼 물고기가 잡히는 거지 . 겨울에는 한 달 이상 저수지가 얼어서 거기서 썰매도 타고 걸어도 다니고 그랬어 .

지금은 날이 따순가 잘 안 얼더라고 .” 과거에는 붕어가 가장 많이 잡혔다 . 메기 , 쏘가리 , 잉어도 있었고 새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많지 않다 . 이동례 (83) 할머니는 “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외국에서 배스 종자를 들여왔어 . 그놈이 우리나라 물고기 씨를 말린 거야 .

저수지에 물고기가 있긴 있어도 거의 없으니까 이제는 잡는 사람도 별로 없어 ” 라고 말했다 . ■ 가을은 일하기 좋은 계절이야 다시 찾은 옥포마을 . 다행이 날이 맑았다 . 낮 기온 22 도에 햇살이 강하지 않아 선선했다 . 경천저수지는 외지에서도 낚시를 하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

임종현 (32) 씨도 대전에서 낚시를 하러 옥포마을을 찾았다 . “ 대략 열두시에 와서 여섯 , 일곱 시까지 낚시하다 가요 . 원래 여기서 큰 고기가 잘 나오는데 요즘은 잘 안 나와요 . 경천저수지는 2 년 전부터 오기 시작했는데 올해만 열댓 번 왔어요 . 낚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기가 유명해요 .

공기 좋은 데서 낚시하면 이렇게 경치도 보고 기분이 좋아져요 .” 종현 씨가 낚시를 하는 그 시각 , 주민들은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 김명자 (50) 씨는 하우스 안에서 양파를 손질하고 있었다 . 지난 5, 6 월에 수확한 양파를 손질해 판매하기 위해서다 .

무른 양파는 골라내고 바람을 이용해 껍질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 “ 크기별로도 분류하고 껍질이 상한 양파도 따로 골라내요 . 오늘 아침 9 시 못 돼서 나왔는데 저거 다 해야 집에 가요 . 올해 13 마지기 정도 양파 농사를 지었는데 양파 값이 너무 싸네요 .” 누군가의 소쿠리에서 대추가 말라간다 .

어떤 집은 마당에서 빨간 고추와 감을 널어놨다 . 한 할머니는 마당에 너른 결명자와 깨를 털고 있다 . 탁탁 . 꼬순 냄새가 난다 . 가을 냄새다 . 배추에 약을 주고 있던 유옥순 (73) 할머니는 이 계절이 마음에 든다 . “ 눈 뜨면 밥 먹고 일하는 게 생활이야 . 어제는 비가 와서 일을 못했어 .

그래서 지금 더 바쁜 거야 . 배추 약 주고 나면 뭐하냐고 ? 몰라 . 생기면 해야지 . 일은 만들어서 하는 거야 . 요새는 해가 안 뜨면 일하기 좋아 .

참말로 일하기 좋은 계절이네 .” [ 박스 ] 운제리 옥포마을은 = 「 화산면 100 년사 화산별곡 」 에 따르면 운제리 옥포마을은 수몰 이전에는 300 호가 살던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과거 운제현의 핵심 거점이었다 . 조선시대 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

옥포 주민들은 한때 경천저수지를 ‘ 한국은행 ’ 이라고 불렀다 . 아무리 돈이 떨어져도 그물만 갔다 넣으면 몇 만원씩 돈이 나온다고 해서 그렇다 . 임희백 전 이장은 가장 재수가 좋았던 기억으로 하루에 100 만원까지 벌었다고 한다 . 이런 날은 가뭄에 콩 나는 날이다 .

= 동아일보 1973 년 5 월 15 일자에 따르면 ‘ … 일제 때인 1935 년 12 월 거대한 경천저수지가 완공되면서 마을의 논밭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버리고 ,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 뭍 ’ 에서 ‘ 물 ’ 로 옮아갔다 .

‘ 어부가 밭 갈기도 어렵겠지만 쟁기 잡던 손으로 노 저어 가기가 더 어려웠다 ’ 고 김연익 노인 (73) 은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던 30 여 년 전의 어려웠던 때를 회상한다 .’

현장 사진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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