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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0.11.12

선돌마을의 만추

김길중 할아버지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0.11.12 13:39 조회 3,1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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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 팔러 등짐 지고 서울까지 갔지 젊은 시절 마을 한지공장서 일해 사기피해만 네 번 "여보, 속 썩여 미안" 김길중 (81) 할아버지는 입석마을이 고향이다 . 더 정확히 말하면 지향마을이 고향이다 . 현재 행정구역상 입석마을에 속하는 지향마을은 과거에 36 가구 가량 살던 큰 마을이었다 .

“ 지향에 살던 토박이들은 거의 다 나가고 이제는 몇 집 없어요 . 저 태어났을 때는 지향마을이었는데 커가면서 입석마을이 됐어요 . 입석마을이 된지도 오래됐죠 . 어릴 때랑 마을 풍경도 많이 달라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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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길도 없고 차도 없었어요 .” 한지로 유명했던 마을에서 한지기술자로 일했던 김길중 할아버지. 열심히 살아 자식 여섯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마을은 예부터 한지로 유명했다 .

할아버지 집 근처에 한지공장이 크게 있었는데 지향마을은 물론 입석마을 , 학동마을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을 했다 . “ 사람들이 서울에 한지를 팔러 갈 때는 등짐에 한지를 짊어지고 밥을 끓여 먹을 단지 밥그릇을 챙겨서 갔다 왔어요 . 서울을 갔다 오면 한 보름 걸렸죠 .

먹고 잘 때를 빼고는 계속해서 걸은거에요 .” 당시 한지공장에는 닥나무를 삶는 굉장히 큰 솥이 있었다 . 크고 두꺼워 총을 쏴도 뚫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 길중 할아버지는 “ 그 솥을 형무소로 가져갔다고 하더라고요 . 거기에서 사람들 밥 끓이는 용도로 가져간거죠 .

얼마나 컸으면 그랬겠어요 ” 라고 말했다 . 특히 이곳의 한지는 유독 색이 좋았다 . 길중 할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 유리창처럼 깨끗하고 맑은 빛깔 ’ 의 종이였다 . “ 물이 좋아서 그렇대요 . ‘ 서출동류수 ’ 라고 서쪽에서 동으로 흐르는 물이 흔치 않은데 이곳 물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

위에서 구정물이 내려와도 물색이 좋았어요 . 전주 , 서울 어느 지역을 가도 우리 마을 종이가 최고급 대우를 받았죠 . 나라에서도 우리 한지를 사갔어요 .” 할아버지는 스물다섯에 같은 마을에 살던 여성과 결혼했다 . 결혼 후 아버지와 형님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서른 때 분가를 했다 .

그때 지은 집이 현재 옆집인 김유옥씨가 오가는 흙집이다 . “ 그때 집을 같이 지었던 목수님은 돌아가셨어요 . 집 짓는데 한 달 정도 걸렸나 . 아내하고 제가 손발이 잘 맞거든요 .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집을 지었어요 . 그때는 한창 한지 일 하면서 돈도 잘 벌 때라서 잠도 안 왔어요 .

3, 4 시간만 자고도 일했죠 .” 돈은 한참 잘 벌었지만 할아버지는 네 번 정도 사기도 당하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 “ 그땐 돈을 쓰는 게 어려웠지 버는 건 쉬웠어요 . 하지만 제가 배운 게 없다보니 귀가 어려요 . 제 단점이에요 .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의심하지 않다보니 살림을 네 번 정도 엎었어요 . 아내한테 미안했죠 . 여보 , 내가 더 벌게요 . 걱정하지 마소 . 몸만 건강합시다 . 이렇게 이야기했죠 .”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더 열심히 살았다 . 표고버섯 재배도 하고 곳감 농사도 지었다 .

그렇게 자식 여섯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 “ 우리 안식구가 차도 없을 때 학교 다니며 자취하는 아이들 밥 먹이려고 토요일이면 전주를 나갔어요 . 일주일치 반찬을 해서 그걸 짊어지고 갔죠 . 그렇게 고생해서 자식들도 대학교까지 다 나오고 , 지금은 다 부모에게 든든히 잘해요 .

매주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와요 .” 이제는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 바라는 것도 없다는 길중 할아버지 . 짧은 이야기로는 담지 못할 자신의 인생을 슬며시 떠올려본다 . 할아버지 집에 온지 얼마 안된 강아지, 아직 이름도 없다 “ 저는 제 인생에 대해 만족해요 .

나는 한다면 기어코 하는 사람이거든요 . 손주가 11 명인데 이놈들이 오면 할머니 , 할아버지를 꼭 안아요 . 전화도 자주하고요 . 사랑을 주면 그것도 다 돌아오더라고요 .” 할아버지에게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없는지 여쭈었다 . “ 여보 , 내가 속 썩인 거 미안해요 .

당신 몸만 건강하면 좋겠어요 . 건강이 제일이잖아요 .”

현장 사진

김길중 할아버지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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