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두 살 농사꾼 오해녕 할머니 때가 되었으니 일 한다 꼬부랑 할머니의 밭 손질 삼매경 당신도 불편한데 칠순 아들걱정 호미를 지팡이 삼아 마늘밭으로 산 아래 나있는 밭에서 할머니가 허리 숙여 일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봄이 오니 농부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지난 2월 26일 낮 고산면 서봉리 관덕마을에서 ‘꼬부랑 할머니’ 농부를 만났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 운주방향 17번 국도변 쭉 뻗은 우회도로를 차로 내달리면 보이는 마을이다. 너무 웅장해 부담스럽지도, 너무 작아 쩨쩨하지도 않은, 얕은 산이 세 채의 아담한 집들을 품고 있는 작은 마을.
집이 자리한 언덕배기 그리고 그보다 좀 아래에 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밭에 한 꼬부랑 할머니가 있었다. 꼿꼿하게 서 있는 작물에게 당신의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하고 있는 할머니.
“여기까지 놀러와 줘서 고마워요.” 놀러왔다는 낯선 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건네시는 어르신은 관덕마을에서 산지 70년이 넘은 오해녕(92) 할머니다. “밭에 금방 나왔어. 인자 봄이네. 겨우내 놀다가 봄이 와서 쪼깨 바빠졌지. 올해는 봄이 일러갖고 일찍 일을 시작한거여.
요새는 금방이면 계절이 넘어가. 반짝하고 가버려서.” 할머니는 마늘밭에 난 잡초를 뽑고, 마늘 모종을 정리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결코 쉬지 않는다. 날이 풀리자 고산 관덕마을 얕은 산 아래 마늘 밭에서 오해녕 할머니가 잡초를 뽑고 있다. “아이고, 풀도 징글맞게 많이 났네.
이렇게 땅이 움품움푹 파진 거는 고라니가 파서 그래. 여기 멧돼지도 오고 두더지도 많아. 여 앞에 냇가가 있응게. 이번 시한은 솔찬히 추웠어. 다 얼어 죽었잖아요.” 할머니는 용진면 간중리에서 스물둘에 관덕마을로 시집왔다.
이후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고, 지금은 맏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마늘 농사를 짓는다. “할머니, 힘드시니까 아드님 오시면 일 하라고 하시고 쉬세요”했더니 “우리 아들도 칠십이여. 여기저기 아파서 지금 병원 갔어. 며느리도 어깨가 아파서 수술했고. 나도 다리가 아파. 이제는 앉았다 인났다를 못혀요” 한다.
구순이 넘은 노모는 아들 며느리의 건강을 걱정한다. 그 작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주름이 깊어가고 허리가 굽어가는 자식을 보며 할머니는 여전히 자식이 안쓰럽다. 다리가 불편한 노모는 작은 호미를 지팡이 삼아 움직인다. “그래도 이렇게 쪼매 일도 하고 걸어 다녀야 몸이 나아요.
반나절 둘러 잠만 자면 더 죽어요. 이렇게 바람도 쐬고. 밭이 또 이렇게 있응게 갖고 놀만혀요.” 할머니는 겨울이 가장 좋다. 농부들이 쉴 수 있는 방학이니까. 심심해도, 몸이 편하니까. 여름이 되면 날이 덥고 일이 많아 고되고 바빠진다. 하지만 거역할 수는 없다. 그것을 순리 삼아 평생을 살아왔다.
“나는 꼬부라져서 모자를 쓰면 일이 안되아요. 봄볕이 쎄던 어찌던간 죽지 못해서 살았응게. 시방 양로당은 먹을 것도 많이 나온다던데 나는 거기서 밥 한 숟가락도 안 얻어먹었어요. 밥 얻어먹겠다고 이런 늙은이가 가겠어요. 나는 내가 벌어먹어요. 여태껏 공짜는 구경을 안했어요.
난 이것 밖에 몰라요.” 자연이 순환하면서 작물은 커가고, 사람은 나이를 먹어간다. 겨울이 지났으니 이제 봄이다. “봄이지, 인제. 작년에 윤달 들어서 올해는 봄철이 일러요. 이제 일을 해야제. 때가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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