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모레 구십, 행복한 냥집사 니야옹 ~ 만경강 둑방길 바로 아래에 위치한 조상희 (87) 어르신의 집이 눈에 띈 것은 다름아닌 집 앞을 지키고 있던 고양이 때문이었다 . 햇살을 찾아 나른하게 누워있던 이 고양이 세 마리는 3 일 전 상희 어르신 집을 찾아왔다 .
“ 며칠 전에 보니까 애미가 새끼를 떼놓고 갔어 . 불쌍하잖아 . 죽일 순 없으니 밥을 챙겨줬어 . 근데 사료를 줘도 먹질 않고 생선을 구워서 줬는데도 안 먹대 . 그래서 우리 아덜이 오늘 간식을 사왔어 . 한번 먹여볼라고 . 짐승이라고 죽일 수는 없잖아 .
이것들도 생명인데 .” 처음 본 객도 춥겠다며 냉큼 집으로 들이는 상희 어르신은 예전에 키운 고양이 ‘ 미니 ’ 가 집을 나가고 헛헛했던 그 마음을 끄집어낸다 . “‘ 미니 ’ 라고 괭이 새끼를 얻어다가 8 년을 키웠는데 언젠가부터 안 들어와 . 죽었나봐 .
이 동네 저 동네 우리 아덜이랑 손주랑 찾으러 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어 . 묻어주려고 찾으러 다녔는데 그것도 못 찾았어 . 그게 마음에 걸려 . 지금 집에 있는 노란괭이 새끼보고 우리 손주가 ‘ 미니 ’ 라고 부르더라고 .
옛날 그 괭이랑 이름이 똑같아 .” 고향이 서울인 상희 어르신은 구이가 고향인 남편과 함께 58 년 전 이 마을에 정착했다 . 그는 서울에서 방직공장을 다니며 멋진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던 여성이었다 . “ 열일곱 정도에 일을 시작해서 스물여섯까지 일했어 . 웬만한 남자보다도 돈을 더 벌었어 .
직장 다니는 재미로 시집갈 생각도 없었지 . 근데 친정 고모가 우리 아저씨를 중매 선거야 . 우리 아저씨 인물이 반지르르해서 고모가 놓치기 아깝다고 중매를 섰어 .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갔어 . 그땐 다들 스무살이면 시집갔는데 난 스물일곱에 갔어 .
골드미스라고 했지 .” 스물아홉에 첫 아기를 낳고 , 정신없이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나가던 버릇이 인이 박혀 지금도 새벽 4 시면 눈이 떠진다 . “ 새벽 두세시면 일어나서 애들 먹을 밥해놓고 빨래 해놓고 일하러 갔어 . 그땐 세탁기가 있간 . 빨래터에서 빨래해놓고 간거지 .
그러다 일하면 어둑해져서 집에 와 . 남 논밭에 나가 일하고 온 거지 .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 그땐 .” 고생만 하다보니 세월이 흘렀다 . 이십여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큰아들과 손주와 함께 산다 . 적적하지 않아 좋고 , 착한 자식들 덕에 웃으며 산다 .
“ 옛날엔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거 같어 . 자식들 가르치느라 일 진짜 많이 했어 . 첫 애기 낳고도 누가 나 밥 해줄 사람이 없어서 애기 낳은지 4 시간 만에 부엌으로 나갔어 . 나 먹을 밥 하려고 . 근데 큰딸이 12 살이 되니까 ‘ 엄마 내가 밥 할게 ’ 라고 하더라고 .
큰애가 지 동생들을 키웠어 . 없는 살림에 자식들 고등학교 졸업도 간신히 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속이 아파 . 그래도 지금은 다 잘 살아 . 손자도 공부를 잘하거든 . 내가 복 받은거지 .” 상희 어르신이 사는 집은 그가 58 년 전 마을에 정착했던 집 모습 그대로이다 . 오래된 옛날 집 .
낡고 좁은 집이지만 이곳엔 어르신이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 “ 우리가 지은 건 아니고 만들어진 집에 들어온거야 . 그때도 만든지 솔찬히 됐으니까 지금쯤 100 년은 넘지 않았을까 ? 봐바 , 집이 다 허물어지잖아 . 아들들이 주공아파트로 가자고 해도 내가 싫어 . 이 동네를 떠나기가 싫더라고 .
한평생 살았으니 서운하지 . 동네 사람들도 나 가지 말라고 잡아 . 이 마을이 인심이 좋은 곳이야 .” 점심식사로 아들이 사온 김밥을 먹었다는 상희 어르신과 따뜻한 이불 아래서 이야기를 나눈다 . 큰 소리로 틀어놓은 텔레비전은 쉴 틈이 없다 . “ 우리 집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놀러와 .
이 동네에 늙은이들은 대여섯명밖에 안돼 . 죽는 건 장담 못하잖아 , 언제갈지 모르니까 . 나도 낼 모레 구십이야 . 나이를 먹으니 아픈건 어쩔 수 없더라고 . 우리 자식들은 건강해야지 . 그게 내 소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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