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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5.11.18

단풍빛 천등산 아래 원장선마을

금 캐던 마을, 이젠 금보다 귀한 곶감이 단내 솔솔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5.11.18 15:12 조회 68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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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캐던 마을, 이젠 금보다 귀한 곶감이 단내 솔솔 휘돌아 마을 한 바퀴 마을 앞으로는 맑은 장선천이, 마을 중심부에는 단풍물 들어가는 천등산이 자리 잡은 운주면 원장선마을. 산빛이 곱고 물이 맑아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건설보수작업차로 감따는 김수홍씨 (3)
#건설보수작업차로 감따는 김수홍씨 (3)

다른 곳에서는 마무리된 추수가 원장선마을에서는 한창이다. 곳곳에서 잘 익은 감을 따서 손질하고, 깨와 팥을 널어 말린다. 서리가 내리기 전 해야 할 일이 많은 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 천등산이 굽어살피는 마을 농협과 천등산 슈퍼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다리 아래 흐르는 장선천 너머로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원장선마을에 들어선 객의 눈길을 가장 잡아끄는 것은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천등산이다.

천등산은 짙은 숲을 품은 돔형의 암릉으로, 봄에는 고사리, 여름에는 도라지꽃과 나리꽃이 지천이다. 가을이 더 무르익으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관을 볼 수 있다. 원장선마을 사람들은 천등산을 특별하게 여긴다.

원장선마을 토박이 백남선(94) 어르신은 “우리 마을은 천등산을 등지고 금강 지류가 흐르는 배산임수 명당에 있다”며 “천등산의 가호를 받은 덕분에 전쟁 때에도 아무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천등산에 얽힌 신비로운 설화도 들을 수 있었는데,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기 위해 천등산 기슭에 용계산성을 쌓고 적군과 싸울 때 천등산 산신이 환히 산을 밝혀주었다는 이야기다. 산신의 도움으로 견훤이 승리한 뒤부터 천등산의 지명에 하늘 천, 등불 등을 썼다는 말도 있다.

천등산 중턱에는 아직도 신당 터가 남아있다. ■ 장선광산 이후 심어진 감나무 원장선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전, 이곳은 금광으로 마을이 분주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어르신들은 이야기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장선광산(금당)은 해방 이후 동원탄좌에서 운영했고, 채광량이 여전한 덕분에 광산 일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광산엔 새벽부터 등짐을 진 광부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광산에서 나오는 금은 마을사람들뿐 아니라 인근 운주사람들의 생계도 책임졌다.

김기홍 이장이 2년 전 드론으로 찍은 마을 사진
김기홍 이장이 2년 전 드론으로 찍은 마을 사진

김기홍 이장은 “폐광 전에는 마을의 주요 소득사업이 금광이었다. 88올림픽 무렵에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감나무가 조금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그 무렵부터 논밭을 일구던 주민들이 산자락마다 감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이 되자 마을은 감이 익어가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김 이장은 “지금은 대부분 15년 이상, 길게는 20년 가까이 감농사를 짓고 있다”며 운주감은 품질이 좋아 상품성도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산나물과 곶감이 마을의 새로운 보물이 되어, 예전 금광 시절 못지않게 마을을 살찌우고 있다.

■ 주홍빛 수확의 계절 11월 3일, 늦가을 햇살이 들자 마을 곳곳에서 달큰한 감 냄새가 퍼진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수확철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대부분의 농가는 감을 따고 깎는 일까지 마무리했다. 집집마다 줄에 매단 곶감이 바람에 흔들리며 원장선마을의 계절을 알린다.

마을 끝자락에서는 아직 감을 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수홍(46) 씨가 건설 보수작업차를 몰며 감나무 곁을 오르내렸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아침 7시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서른 상자는 채웠죠.” 그가 타고 있는 건 마을에서 흔히 쓰는 감 따기용 굴착기가 아니다.

원래 시설 보수에 쓰이던 장비를 직접 써보니 감 수확에도 제격이었다. “감나무 높이가 들쭉날쭉한데 평지에서는 이걸로 감을 쉽게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해봤어요. 써보니까 정말 편하더라고요.” 김 씨는 전주에서 마을로 들어온 지 2년째로 이제는 감농사도 제법 손에 익었다.

“이제는 감 따는 일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어요. 처음보다 훨씬 수월해요.” 그가 마지막 감을 내려놓을 무렵 마을 곳곳에서는 또 다른 수확이 이어지고 있었다. 강옥순(84) 어르신은 팥 수확을 마치고 밭에 앉아 낟알을 고르고 있었다. “올해는 팥을 한 키로쯤 심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썩은 게 많아.

팥 터는 강옥순 어르신 (3)
팥 터는 강옥순 어르신 (3)

그래도 골라내서 먹어야지. 팥죽이라도 해먹을라고.” 현옥춘(73) 부녀회장 집에서는 생강 손질이 한창이었다. 햇볕이 드는 마당에는 겉보리가 널려 있었고 바람에 말라가는 냄새가 퍼졌다. “감은 어제 다 깎았어. 곶감 건조되는 동안에는 생강 손질도 하고, 겉보리도 말려서 엿기름 만들고 해.

조금씩 먹으려고 하는 거야. 해마다 이맘때는 바쁘지.” ■ 요가수업과 함께 나누는 저녁식사 같은 날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바쁜 농사 일과에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올해 초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사업인 시민자율 학교 ‘OO마을학교’ 프로그램으로 열린 요가수업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농사일로 뻐근했던 몸이 하나둘씩 펴지며 어르신들의 표정에도 한결 여유가 감돌았다. 현옥춘 부녀회장은 “요가를 하면 농사하느라 뻐근했던 몸이 금방 풀려서 좋다”고 말했다. 김기홍 이장은 “농사에 지친 주민들이 이런 수업으로 잠시 환기를 하는 느낌이라 참 좋다”고 덧붙였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어르신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나눴다. 요리와 반찬을 함께 준비하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마을의 또 다른 일상이자 주민들 간 소통의 장이 됐다. 김 이장은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저녁도 항상 함께 먹는 다”며 미소 지었다.

긴 농사철 한창, 붉게 물든 감처럼 올가을 원장선마을은 풍요로움을 말없이 전한다.

원장선요가학교
원장선요가학교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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