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면 나와 양파 파는 소순덕 할머니 농사 짓고 양파 팔고 한글 공부도 하느라 바빠 “ 아이고 , 감사합니다 .” 비가 온다 . 간만에 내리는 비 . 쏟아지는 소리가 제법 시원하다 . 소순덕 (77) 할머니가도 비가 오질 않아 그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 “ 한 800 평 고추농사를 지어 .
나 혼자 하지 . 기계 불러서 땅을 갈아놓으면 다음부턴 다 내가해 . 요즘 비가 워낙에 안 왔잖아 . 비가 안와서 올해는 양파값도 작년보다 한 이천원은 비싸 .” 익산 왕궁이 고향인 순덕 할머니는 빗소리와 함께 덤덤하게 인생을 입 밖으로 쏟아내신다 . “ 내가 여섯 살 먹고 엄마를 잃었어 .
아버지가 각시 얻어서 같이 살았지 . 나도 고생 지지리 했네 . 아버지가 술 마시고 나를 여기로 시집을 보냈어 . 이게 좀 억울하대 . 그땐 결혼 전에 사주를 봤거든 . 남자네 쪽에서 사주를 봐갖고 옷감이랑 싸서 보내온거야 . 그러니까 결혼을 안 할 수가 없지 .
그래서 여기로 왔어 .” 스물셋에 시집와서 아들 둘에 딸 셋을 낳았다 . 남의 논밭을 빌려 나락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고 자식을 등에 업고 밥을 했다 . 직접만든 꽃을 들고 자랑하는 소순덕 할머니 “ 내가 시집 안 간다고 하니까 작은 아버지가 일단 가래 . 가서 못 살겠음 다시 오라고 . 하이고 .
내가 그 말을 고지 ( 곧이 ) 들었어 . 고생한건 말도 못해 . 그래도 시어머니는 좋았어 .” 순덕 할머니는 시집오기 전까지 갖은 바느질일을 했다 . 그걸로 돈을 모았고 시집도 올 수 있었다 . “ 내가 바느질 하나는 잘 혀 .
젊을 때도 저거 입고 싶다하면 옷감에 빨간물도 들이고 녹색물도 들여서 만들어 입었어 . 주름치마도 만들어 입고 깨끼저고리도 입고 . 지금도 누가 옷을 사준다면 난 참 좋아 . 자식들 어릴 때도 내가 옷을 다 만들어줬어 . 지금도 바느질은 잘혀 .” 비가 그치기 무섭게 일을 시작하는 소순덕 할머니.
항상 일하는 할머니의 손과 발은 늘 부어있다. 새벽부터 일벌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할머니는 이제야 신을 벗고 양말을 벗는다 . 감춰있던 발이 드러난다 . 고된 발 . 그의 하루는 퉁퉁 부어있다 . “ 일하고 오면 손도 간지럽고 붓고 그려 . 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 오늘도 새벽 3 신가 일어났네 .
감나무 약 주고 집안일도 좀 하고 면사무소도 가서 일했어 . 밭도 한바쿠 돌고 양파도 팔았고 . 아 돈이 있어야 일을 안 하지 . 나도 놀고 싶고 친구랑 야그도 하고 싶지 . 자네도 자식 낳아봐 . 자식도 지들 자식이 있는데 부모 신경 쓸 겨를이 있나 . 친구가 그려 .
내 몸은 20 개는 되어야 한다고 . 저녁에 집에 와서 누우면 못 일어나겠어 . 그러니 밥을 굶고 잘 때가 많어 . 그럼 새벽에 속이 어떻게 쓸쓸한지 몰라 .” 할머니는 고산면사무소에서 하는 한글교실도 다닌다 . 일주일에 두 차례 . 요새는 양파를 팔아야 해서 많이 못 나갔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간다 .
“ 한글을 배우는데 이게 대가리로 안 들어가 . 예전에는 면사무소나 우체국을 못 갔지 . 한글을 모르니께 . 근데 이젠 가 . 버스도 타고 . 아 그래도 나는 일이삼사는 했어 . 백까지는 셀 줄 알았지 . 근디 한글은 징그라 . 하다가 공부가 안되면 이거 이제 배워서 뭐하나 싶고 화도 나 .
요새는 양파 땜시 마음이 한갓지지 않아서 이거 팔고나서 핵교 가려고 .”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손발이 붓도록 바쁘게 일하는 순덕 할머니 . 지난 세월 할머니를 살아가게 한 힘은 다름아닌 자식이었다 . “ 우리 자슥들 , 손주들까지도 내 속을 섞이질 않어 . 내가 고생한 걸 알거든 .
우리 손주 한 놈은 장학금을 받아서 할머니 용돈하라고 십만원을 보내왔어 . 그 돈으로 친구하고 순댓국 한 그릇 사 먹었네 . 요새 사람들은 왜 자슥을 안 낳는겨 ? 우리는 자식 키우는 재미로 살았어 . 요새 사람들 그러면 안돼 . 자식은 사랑이야 .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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