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예술방학-夏] 레지던시 완주에서 보낸 예술방학 완주문화재단 완주예술곳간에 입주한 4팀 완주문화재단은 올여름 [완주예술방학-夏] 레지던시를 통해 완주예술곳간에 입주한 4팀(명)의 참여작가 김경진, 박세연, 아롱다롱, 위주리 씨를 소개합니다.
7·8월 동안 작가들은 마을을 걷고 주민과 소통하며, 자연과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했습니다. 머무는 시간이 곧 창작이 되었고, 완주라는 공간은 예술과 지역을 잇는 특별한 장場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완주에서의 여름방학을 기록해 준 4(팀)명의 작가 이야기를 전합니다.
■ 김경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김경진입니다. 완주예술방학 레지던시에 참여해 두 달간 머물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곳에 대해 잘 몰랐지 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차츰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늦게 자고 일어났는데, 완주에서는 새와 곤충 소리에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활 리듬도 달라져 일찍 잠들곤 합니다. 작업에는 주로 만경강의 물을 사용합니다.
어느 날 바람에 실려 온 깻잎 향 기를 맡으며, 이곳의 모든 작물이 강의 물로 자란다는 생각이 들어 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직접 써보니 물 또한 참 맑고 좋았습니다.
■ 박세연 안경을 벗고 생활할 때는 흐릿한 시야 덕분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고, 선명한 초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군중 속을 멍하니 흘러가듯 지나는 것이 자유롭게 다가왔다. 너무 많은 시각 정보로 피곤해지지 않고, 흐릿함 속 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듯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완주에서는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 안경을 쓰게 되었고, 꽃잎과 나비, 잠자리 같은 작은 자연의 움직임부터 해 질 무렵 하늘빛의 변화까지 또렷하게 바라보며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풍경을 만끽했다. 그래서 완주의 여름 동안은 안경을 쓰고 지낼 예정이다.
■ 아롱다롱 ARONGDARONG(아롱다롱)팀은 예술방학 레지던시 기간 동안 완주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 필름을 다중노출하여 만든 〈기억 속의 이미지〉 시리즈를 작업했습니다.
다중노출은 흐릿하고 겹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선명한 사진보다 우리의 실제 기억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처음 봉동생강골시장에서 시작해 오성한옥마을, 대승한지마을, 전통술 시음, 사격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주민들과 교류했고, 그 경험은 어린 시절 여름방학 같은 추억으로 쌓였습니다. 앞으로는 사진, 인터뷰, 이동 기록을 모아 〈예술 방학 일기〉 결과 기록물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기억 속의 이미지〉 프로젝트는 쌍둥이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해, 같은 여행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다르게 남거나 섞이고 흐릿해진다는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5년 베네치아 여행부터 이어진 이 작업은 올해로 10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 위주리 완주는 어떤 곳일까.
유난히 여러 도시에 걸쳐 일이 많았던 덕분에 스케일이 정말 다른 3곳을 이동하며 완주만의 고유한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완주로 왔던 오늘, 나는 다시 누에아트홀 옆에 자리한 풀밭에 가서 작게 부는 바람에도 한들거리는 풀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돌올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늘 생동하는 미세하고도 온기 어린 움직임. 내게 완주는 그런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대도시의 큰 흐름과 자본의 힘에 휩쓸 리지 않을 정성스럽고 고유한 생들이 이곳에 그들만의 생태계를 꾸리고 있다.
욕심은 버리고 조급한 마음도 덜어내고 뺨에 스치는 바람의 모양을 더듬으며 나를 둘러싼 움직임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온몸으로 느낄 때에 비로소 감각한다. 억 지로 버티거나 부러 만들지 않고 볕과 골짜기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에 조금씩 나를 내어주고 있다. 어느 날, 위봉폭포를 찾았다.
폭포에 다다를수록, 습이 차오르다가 이내 시원한 물소리가 들렸다. 폭포는 거창하거나 위엄있지 않았다. 마치 실오라기처럼, 바위의 작은 요철에도 수가닥으로 갈라지며 표면을 감싸안듯 흘러내렸다. 아, 완주 구나.
암벽 위로 돋아난 풀들도 마치 폭포의 옷을 입은 듯 아래로 늘어지며 유연하게 흩어져 가만가만 흔들렸다. 공간은 사람을 닮고, 나무는 지역의 풍토를 닮는다더니, 이곳의 풀 들도 폭포를 꼭 빼닮았다. 같은 공기를 공유하고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며 뒤섞이는 삶이 그 어디 멀리가 아니라 이곳 완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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