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라복마을 임재길 어르신 집을 알아보던 중 동네어르신의 소개로 화산면 라복마을의 빈집을 보게되었다 . 군수어머님이 살고 계신다는 큰 자랑거리가 있는 마을에 들어서자 , 빈집이 아주 좋다며 임재길어르신이 집소개를 해주신다 .
어르신 키가 훤칠하시고 , 눈망울도 참 커서 옆집분이 잘 생기셨으니 이집에 이사와야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중에 어르신이 아이스크림 한개 먹으라며 본인 집으로 들이셨다 .
곱고 차분한 부인이 계신 집에는 앵무새가 귀염을 떨고 있었고 , 겁많은 강아지 몽이는 반가움 반 두려움 반으로 갈까말까의 몸짓을 한다 .
안 보이는 집 뒤쪽까지 정갈하고 곱게 손이 간 집에는 곳곳에 고운 꽃이 만개를 하였고 , 어느 한구석 한 가족의 세월과 안주인의 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어 참 좋아보였다 .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 서른에 손수 지어 들어온 집이란다 . 그렇게 어르신의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내 장손은 공부를 시켜 나와는 다른 세상 살기를 원하시던 임재길 어르신의 할아버지 생전 그 품에 손주를 안겨드리고 ,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을 때 나이가 14 살이었다고 하신다 . 요즘같으면 어린이날 선물이 맘에 안든다며 울며 땡깡을 부려도 귀여울 조그만 아이의 나이다 .
결혼과 동시에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부모님 , 형제자매와 나의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며 마른입술을 한번 훔치고 별일 아니라는 듯 느린 웃음을 지으신다 .
큰 키와 덩치로 어른들 품삯을 받으며 일을 다니셨다는 어르신은 뒤돌아 가장 힘들었던 일을 여쭙자 , 이제 너무나도 옛날 이야기라는듯 푸석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식솔 먹이려 허리가 까지도록 매일 일 다니던 시절을 짚으셨다 .
아무리 세월이 다르다 하더라도 살아온 날이 짧으니 많은것을 이해 할 수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섭섭한 아이의 마음이 가끔을 들었을테지만 , 그 고된 노동과 거친 세월 속 14 살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많지는 않았을거란 생각에 내 마음까지 아린다 .
하지만 그런 투정에 관한 한 머디 없이 , 허리에 수건을 덧대어 겨우 버티며 살아낸 그 세월에 짧은 세월이 아니라 참 고되었다고 되짚으신다 .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는 곧 전쟁도 겪어내야했다 .
지금이야 어떤 전쟁이었고 언제 끝나는지 아는 역사가 되어버렸지만 , 밤이면 밥을 내놓으라며 들이닥치고 , 날이 밝으면 밥 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언제 끝나는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을 그 어린 나이에 살아내신것이다 . 어르신을 알게 된 이 짧은 시간동안은 들려주셔도 이해도 못 할 정말 엄한 세월을 말이다 .
어르신께 인생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 ‘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지 ’ 라는 말씀에 쓴 웃음이 묻어난다 .
14 살 어린 나이에 먹여살려야하는 집안 식솔을 책임지시고 , 하루에 두번씩 좋은 놈 나쁜 놈이 뒤집혀버리는 세월을 목숨부지하며 버텨내고 , 그렇게 살아남아 만난 좋은 시절에는 또 동네잡꾼들의 꾀임에 넘어가 땅을 치며 후회하는 시간을 보내셔야했고 , 모든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고행도 다 지나보내셨다 .
집안의 장남으로 , 가정의 가장으로 , 6.25 참전용사로 , 그 멋진 얼굴과 몸을 지켜내신 어르신이 얼마나 무게있어보이고 존경스러워보이시는지 어르신도 아실까 . 어떤 세월은 버틴다는것 자체로 보이지 않는 훈장이 되어 그 사람의 가슴에서 빛을 내기도 하는것 같다 .
다시 찾아뵌 비오는 날 , 그런 남편을 위해 좋은 먹거리 손주 챙겨가며 , 올 해 잦은 비에 꽃이 일찍 질라 우산을 씌워주시는 섬세한 안주인과 함께 냉장고 한가득인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드시는 모습에 참으로 깊이 있는 달콤함이 느껴진다 .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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