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그룹홈을 운영 중인 김화순 씨 부부와 그가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는 김호연 ·김배린 씨와 딸 연주 씨(앞줄 가운데), 김 씨는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애인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라 김화순 씨 발달장애 딸 계기로 교육과 시설의 필요성 느껴 시작 “ 장애인은 특히 정서적 안정 중요 ” 용진읍 효천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정원이 있는 2 층 집이 하나 나온다 .
김화순 (66) 씨가 운영하는 장애인그룹홈이다 . 김 씨가 이곳을 운영한지 10 여 년째 . 현재 김 씨의 부부와 3 명의 발달장애인이 함께 생활한다 . □ 장애 딸을 둔 부모로서의 시작 김 씨가 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딸 유연주 (42) 씨 때문이었다 .
김 씨 역시 발달장애가 있는 딸을 둔 부모였기 때문이다 . 발달장애는 선천적으로 또는 발육 과정 중 생긴 대뇌 손상으로 인해 지능 및 운동 발달 장애 , 언어 발달 장애 , 시각 , 청각 등의 특수 감각 기능 장애 , 기타 학습장애 등이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 .
김 씨가 딸을 포함해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과 시설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은 당연했다 . 그래서였다 . 엄마였던 김 씨가 움직였던 이유 . “40 여 년 전에는 장애인이란 타이틀도 흔하지 않았어요 .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나 의료기관도 마땅하지 않았죠 .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어요 . 그래서 그런 것들이 너무나 필요했죠 .” 장애가 있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 그렇게 생긴 곳이 김 씨가 1986 년에 설립한 전북장애인부모회이다 . 별도의 공간도 없었기에 열여덟 평정도 되는 그의 집에서 시작했다 .
그리고 다음해 김 씨는 두 명의 특수교사와 함께 장애인에게 필요한 재활치료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 “ 우리 지역에 처음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생긴 거였죠 . 우리 아이들은 언어치료 , 작업치료 , 재활치료가 필요해요 .
당시에 전주에 있는 병원 한 곳에서 치료가 가능했는데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비쌌죠 . 그래서 저희 집에서 특수교사 두 명과 함께 시작한 거였어요 .” 치료를 담당했던 특수교사들도 큰돈을 바라지 않았다 . 당시 한 달에 그들에게 십만 원씩 줬으니 적은 돈이었다 .
하지만 그들 모두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 사명감으로 아이들을 함께 돌봐준 것이다 . “ 모두 신앙을 가진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해주셨죠 . 제가 안방 드나들 듯 시청이나 도청을 쫓아다녔어요 .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
그러던 중 도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줘서 전북장애인부모회의 공간이 처음으로 생길 수 있었죠 .” 2003 년에는 김 씨의 집에서 그룹홈을 시작했다 . 6~7 명의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지만 아파트라는 공간적 제약을 느껴 현재의 위치로 이사했고 벌써 10 년이 흘렀다 .
현재는 딸 연주 씨를 포함해 모두 3 명의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한다 . “ 무조건 도시보다는 시골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 우연히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 지금은 집 앞에 작은 마당이라도 있어서인지 아이들이 집에서 뛰지도 않아요 .
오길 잘했죠 .” □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서로 울타리가 되어 이들의 그룹홈은 일반 가정집과 같은 생활을 하며 , 교육 등은 각 기관에서 해결한다 . 이집에서 김 씨 부부를 제외하고 딸 연주 씨가 가장 나이가 많은 첫째이고 , 그다음이 김호연 (29) 씨와 김배린 (29) 씨이다 .
막내는 최근 시설로 들어갔고 최근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 호연 씨는 강원도 고성에 있는 시설에서 생활하던 중 이곳에 왔다 . 평소 관심을 못 받으면 스스로를 깨물며 자해를 했고 , 음식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이곳에 오면서 많이 달라졌다 .
배린 씨는 이곳에 온지 20 년째다 . 자영업자인 부모 모두 일 때문에 바빠 호연 씨에게 온전히 신경을 쓸 수 없었고 9 세 되던 해 김 씨의 그룹홈에 왔다 . 김 씨는 이들을 ‘ 우리 아들 ’ 이라고 부른다 . 내 자식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내 자식 , 네 자식이라는 경계가 불분명하다 .
“ 제 딸을 키우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 모르는 게 많았거든요 . 하지만 단체를 운영하고 부모 교육을 받다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 이제는 아이들 눈만 봐도 알아요 .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해요 . 이곳에 와서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자해를 하는 경우도 줄어들었어요 .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하잖아요 . 저희 딸만 해도 혼자 있는 것보다 동생들과 있으면서 역할이 주어지니 더 좋아졌어요 .”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힘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 주변의 편견과 그들의 시선도 장애 가족이 이겨야할 큰 난관이다 .
“ 식당을 간다거나 심지어 종교시설을 가도 노골적으로 아이들을 문전박대하는 곳이 있어요 . 지금은 이골이 나서 그냥 살지만 그래도 그 상처들은 마음에 남아있죠 .” 그는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
그 역시 자신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딸에게 상처를 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 “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있잖아요 . 저도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우리 딸을 일반학교에 보냈어요 . 그러다보니 딸에게 성격장애가 생기더라고요 .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이 장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해요 .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들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 김 씨에겐 자녀들이 많다 . 배 아파서 낳은 연주 씨만이 자식이 아니다 . 그 자식들을 품기 위해 김 씨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
“ 우리나라처럼 특수교육이 잘 된 곳도 없어요 . 늘 감사하죠 .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 개선에 대해서는 아직 노력이 필요해요 .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들이 모두 사회에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 늘푸름그룹홈 _ 문의 010-4177-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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