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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공동체 · 2025.02.18

완주의 문화예술인들

05 홍성미 화가

사람들이 함께 웃고 배우며 살아가는 공동체 현장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5.02.18 15:16 조회 1,7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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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의 문화예술인들 느리지만 깊고 고요하게, 오래도록 관계하기 홍성미 화가 느리다고 서투르다는 건 아니다. 느린 속도를 선택함으로써 남들이 보지 않은 빛나는 순간들을 축적해 놓을 수 있다. 차곡차곡 쌓인 느림의 결과물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모아온 조각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홍성미 작가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홍성미 작가

그렇게 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홍성미 작가는 생활과 작업을 분리시켜놓고 그리는 것에만 몰두한 작가는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하여 삼 남매를 낳고 키우며 아이돌봄, 가족돌봄의 세월을 보냈다.

누군를 돌보는 동안 그림 작업에 대한 갈증이 깊어진 만큼 천천히 땋아 나간 촘촘한 그물망 같은 관계들도 깊어졌다. 느리다고 서투르다는 건 아니다. 느린 속도를 선택함으로써 남들이 보지 않은 빛나는 순간들을 축적해 놓을 수 있다. 『나는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관계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인간과의 관계, 환경과의 관계 등 끊어져선 안 되는 연결고리이기에 모두 소중하다.』 - 홍성미 작가의 글 중에서 버려지는 것들과 관계맺기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직장이 있는 경남 사천과 진 주에서 20년 넘게 세월을 보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었다.

아이 셋 키우는 동안 아이들 물건으로 가득 찬 집에서 자신의 그림작업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종이 한 장 펼칠 공간이나 시간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상 속의 버려지는 재료들을 탐구하게 되며 그림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는 화가들이 캔버스에 작업을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재료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지, 재료 선정도 중요하다가 생각하거든요.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버려지는 좋은 재료가 너무 많아요. 인테리어하고 남은 폐자재들을 구해서 거기다 그리고, 버려지는 옷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물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콩 삶은 물이나 커피로 그림을 그렸죠. 큰 애를 임신했을 때인데 싱크대 정리하다가 유통기한 지난 인스턴트 커피가 있더라고요. 땡땡하게 굳은 것을 어떻게 살릴까 하다가 이걸로 그림을 그려볼 생각을 한 거죠. 명반하고 소금 넣고 끓이고 졸여서 물감처럼 고체형태로 만들었어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좋은 재료에요. 아이 셋 키우다 보니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내 아이가 살아갈 환경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무책임하게 살아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리는 거를 최소화하고 버리지 않게 물건을 구매하는 습관이 생긴 거죠. 상황에 맞게 버려지는 재료들을 찾았던 거 같아요.” 박완서 작가가 생각났다. 다섯 아이 낳고 키우는 동안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이 돼서야 등단을 해서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작가.

생활과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글이 생생하던 작가의 글처럼 홍성미 작가의 작품들도 그러하다. 아이 셋 키우다 보면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철마다 새 옷을 사입히는 것도 무리다 보니 무엇이든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홍성미 작가는 재봉틀로 온갖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 옷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던 재봉틀을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이제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작은 옷들은 차마 버릴 수가 없다. 그 옷들이 간직한 추억들이 떠올라 옷을 잘라 밧줄처럼 엮어 작품으로 만들어 작업실 벽면에 걸어 둔다.

진주살던 시절 미술개인교습하던 아이들과 함께 (3)
진주살던 시절 미술개인교습하던 아이들과 함께 (3)

죽어 있는 재료가 아니라 저마다의 시간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재료로 만든 작품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나무판, 옷가지, 종이조각 등에 아크릴 물감과 유통기한이 지난 인스턴트커피나 콩 삶은 물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지구의 환경, 멸종될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그려 다시 살린다.

홍성미 작가는 2020년 가을,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던 어머니의 입원생활을 함께하며 펜데믹 기간 동안 수없이 제작되고 버려지는 ‘마스크’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다.

병원이라는 긴박한 곳에서 마스크 안에 숨겨진 불안, 그리움, 슬픔을 관찰했고 그 벽을 넘어 서로 껴안거나 만질 수도 없는 안타까움, 애틋함을 느꼈다. 버려지는 마스크를 어렵게 모아 살균세척하고 말려서 그 위에 유성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이, 성 별, 인종 구분 없이 모두의 간절한 이야기를 마스크에 그려 촘촘히 엮어내 설치하는 ‘마스크작업’을 2020년 ‘미술과 상생전’에서 처음 선보이게 되면서 2022년 첫 개인전 ‘소소한 생각’ 이후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다.

모두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 홍성미 작가는 진주에서 살던 시절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 5~6명을 모집해서 함께 그림을 그리던 추억도 소중하다. 보통은 1시간씩 수업을 하는데 그 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더라도 긴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주제를 던져주고 몇 분 이내에 그려내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것을 그릴지 자신이 결정하게 하는 것. 생각을 그림에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처음에 아이들 수업할 때는 수동적으로 선생님 오늘은 뭘 그려요? 묻던 아이들이 다음부터는 선생님 저 오늘 뭐 그릴 거에요!

이렇게 변하는 거죠. 아이들하고 수업하면서 제가 배운 게 많아요. 아이들에게 편견을 가지면 안되겠구나, 기다려주는 게 필요해요. 결과물을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충분한 호흡으로 느리게 천천히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돼요.

아이들이랑 수업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곤 했죠.” 또한 그의 외삼촌 최춘기 작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버려진 마스크를 활용한 그림 작업
버려진 마스크를 활용한 그림 작업

소양에 있는 친정집을 오갈 때마다 사람과 벽을 쌓은 춘기 삼촌이 늘 마음이 쓰여 스케치북과 물감을 삼촌 방 앞에 두고 갔는데 몇 달 후 다시 만났을 때 흰 스케치북이 그림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 뒤로 춘기 삼촌은 완주에서 소 키우며 소양의 산과 물이 있는 풍경, 매화를 그리는 작가가 되었다.

홍성미 작가는 그림이 한 사람에게 치유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2010년부터 군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한 친구 고보연(설치미술가) 씨와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진주에서 군산까지 2시간 넘게 운전하면서도 숨통이 트이는 날이었다.

알콜중독 예방하는 단주모임회원들, 노인들, 발달장애인들과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며 자신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북대 미대 졸업생들의 단체전 ‘지속과 확산’을 준비하면서도 겁이 났다. 10년 넘게 쉬다가 다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두렵고 조바심 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비워야 길이 보인다. 홍성미 작가의 삶의 방식인 느리게 천천히 가다 보면 누구보다 더 오래 길게 갈 수 있다는 것을. 2017년 소양 친정 부모님과 합가하면서 단정하고 소박한 집을 지었다. 2층에는 그가 꿈에도 그리던 작업실이 있다.

두 면을 차지하는 큰 창밖으로 산과 들이 보인다. 낮에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거나 병원에 동행하는 등 딸 노릇을 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작업실 불을 밝힌다. 밤과 새벽에도 언제든 불을 밝힐 수 있는 작가의 작업실이 생긴 것이다.

※ 본 지면은 완주문화재단의 '완주예술발굴·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폐자재를 활용한 작품
폐자재를 활용한 작품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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