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 전민수씨 (47 살 ) 는 대학에서 한약학을 공부한 한약사다 . 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약국은 따로 없다 .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나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꼭 필요한 만큼만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며 살고 있다 . 그래서 그는 한약사 보다는 순례자 혹은 나그네로 불리길 원했다 .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자신을 그렇게 불러주길 바라는지 알 수 있다 . “ 원광대학교 한약학과에서 공부했어요 . 임교환 약사님은 저의 첫 스승님입니다 . 스승님은 약사 세계에서 비주류였던 분이었죠 . 진통제를 먹으면 안 된다 , 항생제는 허구다 , 전염병은 없다 , 이런 말씀을 하셨던 분이니까요 .
환자가 오면 약사가 약을 바로 제조해서 간단하게 복약 안내하고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데 왜 아프세요 라고 질문을 해가면서 시간을 너무 오래 끄니까 전에 일하던 약국에서는 저를 싫어했어요 . 내가 뭐가 문제일까 고민을 많이 했죠 . 그런데 스승님에게 배우길 그렇게 배웠어요 .
핵심은 그 사람의 아픔이 먼저 보여야 된다는 거죠 . 요즘 의료문화에서는 돈부터 보는 이들이 있죠 . 사심이 들어가면 판단력이 흐려져서 명확하게 진단을 내려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우가 많죠 . 처음 만난 스승님께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이 좀 어렵죠 .
스승님이 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 이 기술 익혀서 돈 벌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고 다른 제자들은 다 흘려들었는데 저는 그 말만 들었네요 .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가족들 살리고 저도 살았습니다 .
돈의 길은 놓쳤지만 고지식하게 가다 보니 내 가까운 가족을 살렸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 순례자 전민수씨는 실제로 강아지 네 마리와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하고 있다 . 행색도 상상하던 그대로다 .
긴 머리에 두건 같은 모자를 쓰고 언뜻 보면 청학동에서 읍내에 볼일 보러 잠시 내려온 도인 같은 모습이다 . 하지만 그의 삶은 사람의 몸 , 병과 약 , 사회와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닮았다 .
대학에서 공부한 것에 그치지 않고 민중의학 분야의 이름난 재야의 고수들과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계속해서 공부하고 그만큼씩 자신을 변화시켜 왔다 . “ 부산의 유명한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침을 배운 적이 있어요 . 침을 진짜 잘 놓아요 . 조선 침이라고 하는데 두께가 엄청 두꺼워요 .
근데 안 아프게 정말 잘 놓아요 . 워낙 많이 놓다 보니 그 침이 닳았더라고요 . 할아버지 침 그렇게 많이 놓으면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 난 침 놓은 적이 없다 , 나는 그냥 도구다 . 라고 말씀하셔요 . 그때는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너무 어려웠습니다 .
그 철학적 깊이를 이해할 수 없었죠 . 대학교 과정 이외에 무림의 고수들을 찾아서 전국을 떠돌아다녔죠 . 김해의 어떤 할아버지는 정식교육을 받지 않아서 논리적 체계는 없으셨지만 , 현장의 살아있는 감각이 있으셨어요 .
정읍의 백학의 농원이라고 그곳에는 쳐다만 보면 병이 낫는다는 최영단 할머니가 사셨어요 . 그분의 아드님이랑 같이 약국을 했었어요 . 그 당시 할머님이 처방했던 처방전들이 다 남아 있어요 . 2 년 동안 있으면서 그 기술들을 다 봤어요 .
박문기 선생님 , 박용구 선생님 등 제야의 고수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봤거든요 . 수련의 과정이었죠 .” 30 대가 되어서야 대학에서 한약학을 공부한 전민수씨는 20 대 때 실제로 청학동에 있는 관음법문이라는 단체에 들어가 수련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는 것에 푹 빠져 삭발을 하고 산에 들어가거나 문중 재실에 머물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 어떤 것들이 그를 그렇게 수련하듯 진지한 구도의 생활로 안내했는지 궁금했다 . “ 진짜를 찾고 싶었어요 . 그런데 진짜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더라고요 .
그 안에 있던 생각이 뭐였냐면 가정을 이루면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거였어요 . 그게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가족을 이루는 것 . 그 전에는 제가 그런 것을 터부시했더라고요 . 외부적인 일 그러니까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살라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
그 외에는 세속적인 일 , 삿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굉장한 오만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 깨닫고 나서 환자들을 보니 그때 눈이 떠지더라고요 . 사람들과 상담을 해보면 드라마틱 하죠 .
내 가족의 문제를 직시해서 들여다보고 열리는 경험을 한 뒤에 환자들 만나서 이야기 들으면서도 저 스스로 많이 배우는 거죠 .” 전민수씨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 . 지금은 완주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 언제든 인연이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될지 모른다 .
하지만 인연이 되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감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또 많이 배운다고 했다 .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함도 여러 시행착오와 실제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고 한다 . “ 제가 시골집 살 때 고양이를 키우고 있을 때였어요 .
고양이들이 파보장염이 걸렸었거든요 . 그때 제가 자신만만했어요 . 내가 낫게 할 수 있다고 . 한방이 최고다고 . 그렇게 한방치료하는 과정에서 한 마리가 죽었어요 . 그때도 내가 옳다고 생각했죠 . 그런데 또 두 마리가 죽었어요 . 제 아는 지인은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수액을 맞추고 살려거든요 .
그런데 저랑 살던 고양이는 다 그렇게 죽었어요 . 저의 오만함 때문에 . 그 친구들이 원하는 것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강요했었죠 . 그래서 환자를 만나면 환자의 정보를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나는 내 그릇에 내 정보를 가득 담아서 환자에게 주기만 했죠 .
환자의 것을 가져와야 하는데 반성 많이 했어요 . 보통의 약국이나 병원이라면 환자 만나는 시간이 몇 분 안되요 . 저는 처음 만나는 환자분들하고는 보통 4~5 시간 정도 면담을 해요 . 그렇게 연결된 환자들과는 수시로 전화 통화하며 감정 상태 등을 살피죠 .
주치의이자 편한 형 , 오빠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네요 . 약사인데 약을 처방해주지 않는 약사인 거죠 . 제가 지금까지 살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 밥 먹고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결국 가장 좋은 약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듣고 말하는 것 아닐까 .
사람의 감정은 약의 힘을 이겨버리기도 하는데 ,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감정들을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관계 맺는 이런저런 공동체들이 어쩌면 가장 좋은 약일지도 모르겠다 .
전민수씨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열린 마음이 되었으니 올해는 다 내려놓고 무슨 일이든 해보자 ! 하기 싫은 일도 해보자 ! 결심했다고 한다 . 때마침 경기도의 한방제약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와 인삼재배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이것 역시 스스로 균형 잡힌 관점을 찾아가는 수련의 길 아닐까 . 그는 어디서든 순례자처럼 지낼 듯 하다 . 늘 진지하게 공부하고 수련하는 사람 .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일 테다 . 그릇이 단단해야 아픈 사람들의 말을 많이 담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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